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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토리/챕터 1

[챕터 1] 희망이라는 이름의 움직이는 관 - 일상편 : 3

단간론파 Dan은 단간론파 본가 시리즈의 스토리 및 인물에 대한 스포일러, 주관적 해석과 재창작 요소를 다수 포함하고 있으니 부디 이점 유념해 주시길 바랍니다.

단간론파 Dan은 다양한 등장인물들이 대화를 나누는 내용 특성상 주인공 및 캐릭터들의 속마음 및 생각 등의 부분에서 대본체 표기가 들어간 부분이 많습니다.
읽는데 불편함이 없길 바랍니다.



-



···

???: 일은 어떻게 되가고 있어? 순조로워?

???: 순조롭다고는 말 할 수 없을 것 같은데 나쁘지는 않은 것 같아.

 
 
확신이 서지 않는 듯한 말투.
하지만 어째선지 자신감이 묻어나오는 말투.
근거 없는 자신감은 근거 있는 자신감으로 바뀌고 비로써 더 근거 있는 자신감으로 변하기 마련.


???: 이번에는 실패하면 절대 안돼. 이번에는 '기회'가 없다고.

 

단호한 말투.이런 상황이 익숙한 듯한 말투.

 

???: 나도 알아! 얌전히 보고 있기나 해 이 키다리 아저씨야!

???: 건방진 건 똑같군. 땅딸보.

???: 내가 그걸로 부르지 말랬지!

 
???: 일단 지켜보는 편이 좋을 것.

···




단간론파 Dan
<챕터 1>
희망이라는 이름의 움직이는 관

.
.
.


식당에 남은 인원은 나까지 포함하여 단 5명.
나머지 분들은 본관이 아닌 야외를 조사하기로 하셨다.
이별을 끝맺은지 얼마 안 된 연인들 같이 약간의 침묵이 유지된다.
 
 
가미네 우타로: 모두들 갔네...
 
이코 하야오: 다시 만날 테지만 뭔가 이런 느낌은 별로 좋지 않단 말이지~
 
이메 미치카: 뭔 걱정이야, 멀리 여행 떠난 것도 아니고 빨리 조사하자~
 
지타 유토: 그럼 이제 시작해볼까요.
 
나즈마 마이리: 좋아! 그럼 식당이랑 조리실부터 차례대로 조사해볼까?
 
이코 하야오: 새로운 것은 항상 설레이지~ 마치 사랑 같이 말이야~
 
 
새로운 것... 새로운 시도...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나는 새로운 시도를 하는 것이 늘 두렵다.
아이코 같이 긍정적으로 생각하여 행동으로 옮기는 반면 나 같은 사람도 있는 것이다.
'내가 할 수 있을까?', '실패하면 어쩌지?' 시작하기도 전에 부정적인 감정이 뇌를 지배한다.
두려움은 망설임으로 바뀌고 망설임은 합리화로 변한다.
'그래 괜히 시간 낭비하지 말자', '기존에 하던 것만 잘하면 되지' 그런데 우린 정말 기존에 하던 것으로 만족하고 있을까?
아닐 것이다.
아니기에 새로운 것을 시도하고 싶은 맘이 드는 것이다.
 
두려움에 시도하지 못하다가 어쩔 수 없이 손을 댔는데 '이게 되네, 난 왜 겁을 먹었던 거지?' 이렇게 될 수도 있는 것이다.
물론 무작정 들이대면 안 된다.
어느 정도 조사도 해야 하고 이것을 해야 하는 이유도 곰곰이 생각해 봐야 한다.
나에게 필요한 것인지 나는 왜 이것을 하고 싶은지 충분히 생각한 후에 관련 자료를 찾아보고 손을 대야 한다.
준비하다가 지칠 수도 있는 거 아니냐고 반문할 수 있겠지만, 내가 꼭 해야 하는 것이라면 준비하는 과정도 즐거울 수 있다.
그러니 복잡한 생각은 내려놓고 가벼운 마음으로 조사에 임하기로 하자.


지타 유토: 여러분들만 괜찮으시다면 성이 아닌 이름으로 불러도 괜찮겠습니까?

나즈마 마이리: 난 상관없어!

이메 미치카: 편한대로 해~

가미네 우타로: 나도 찬성이네. 편하게 나도 이름으로 부르겠네.

이코 하야오: 모두가 그렇다면 나도 이름으로 부르도록 할게~

 
조사하는 동안에는 성으로 부르게 되면 뭔가 정 없고 딱딱해 보일 것 같았다.
그래서 이 안건을 제의한 것이다.
다행히도 그것을 불편해하는 이는 없었다.
 
 
이메 미치카: 이렇게 된 거 유토 너도 반말하지 그래~? 다른 사람 전부 반말하는데 너만 안 하잖아~
 
지타 유토: 저한테는 존댓말이 더 편해서 그렇습니다. 
 
이메 미치카: 음~ 알겠어 너 편한대로 해~
 

자이메.. 아니 미치카는 굳이 이유를 캐묻지는 않았다.
내가 존댓말을 선호하는 이유는 누구한테 보여주기 위함이 아니다.

이 친밀함을 영원히 유지하기 위한 방편으로 그렇게 하고 있는 것이다.
친해지면 서로 함부로 대하는 경향이 있다.
잘 아니까 이해하겠지라는 마음에서다.
그런데 그렇지 않다.
그럴수록 예의를 지켜야 한다.
 
우리가 누군가의 결혼식에 참석할 때 차려 입고 가는 것은 상대방의 귀한 시간을 특별하게 예우하기 위함이다.
다른 사람들에게는 특별하게 대하면서 나와 친한 사람들에게 함부로 예의없이 한다는 것은 이치에 맞지 않다.
다른 이를 이름으로 부르는 것은 할 수 있지만 반말을 쓰는 것은 나에게는 익숙치 않다.


나즈마 마이리: 유토 군, 가만히 서있고 뭐해?

지타 유토: 아.


잠시 혼자만의 독백에 빠져 있었다.
그 사이 다른 분들은 이미 조리실 문 앞에 서 계셨다.
이런 상황을 줄이기 위해서라도 독백은 줄이는 것이 좋은데 말이다.
그렇게 나 또한 명쾌한 발소리를 내며 조리실 쪽으로 향했다.


가미네 우타로: 유토 단원과 마이리 단원은 아직 조리실에 들어간 적 없는 것 맞나?

나즈마 마이리: 네 없어요!

지타 유토: 저도 없습니다.

가미네 우타로: 그럼 살짝 놀랄 수도 있겠네. 그럼 열도록 하겠네.


그렇게 말하며 우타로가 조리실의 문을 열었다.
놀랄 수도 있다는 말의 의미를 난 곧바로 알 수 있었다.
생각 의외로 조리실의 크기가 꽤나 컸기 때문이다.
그 생각 다음에 내 피부에 와닿은 것은 덥다고 느껴질 공기였다.
그렇게 큰 차이가 느껴질 정도는 아니었지만 달라졌다는 것 자체는 알 수 있었다.
 
조리실의 풍경은 일반적인 조리실과 큰 차이는 없었다.
학교에서 한 번 쯤은 봤을 법한 하얀색 벽지에 은색으로 코팅된 조리 기구들까지 너무나도 익숙했다.
심지어 아까 이용 되었던 탓일까 더욱더 친숙한 냄새들이 나의 코를 자극했다.
 
 
가미네 우타로: 생각보다 관리도 잘 되어있고 있을 만한 건 다 있네.
 
이메 미치카: 모노젠틀이 생각보다 이런 거에는 진심인가봐~
 
이코 하야오: 전부 새 제품인 것 같던데 돈 많이 깨졌겠다~
 
지타 유토: 차례대로 조사해보도록 하죠. 칼 같은 날붙이들에 베이지 않게 조심합시다.
 
 
그렇게 본격적으로 조리실을 조사하기 시작했다.
다른 이들이 말했던 대로 조리실의 시설은 매우 훌륭했다.
왠만한 호텔에 있는 주방과 조리실을 뛰어넘을 정도로 깔끔했다.
 
 
나즈마 마이리: 전부 새 제품은 아닌 것 같아. 몇몇은 사용되서 페인트가 벗겨지거나 마모 된 것 같거든. 그래도 작동 안 되는 건 없어보이고 오히려 잘 관리 되어있어. 내가 보증할게.
 
 
마이리가 그렇게 말했으니 문제는 없어보였다.
다른 이도 아니고 초고교급 수리공인 그녀가 한 말이니 말이다.
이 정도로 좋은 시설을 살인을 강요하는 상황에서 마주하다니 참으로 아이러니하다.
살인을 강요하는 이상한 장소가 아니었다면 더욱 더 좋았을텐데 말이다.


나즈마 마이리: 근데 갑자기 생각나서 한 말인데, 우리 중에 요식업 쪽으로 재능이 있는 애가 있었으면 좋았을텐데 그치?
 
이메 미치카: 음 굳이? 지금도 충분히 괜찮은데? 혹시 누가 맘에 안 들어~?
 
 
미치카가 부착걸이에 걸려있던 칼 한 자루를 들며 말했다.
 
 
나즈마 마이리: 야야 칼 내려놔! 그냥 있으면 편하겠다 같은 작은 소망이지!
 
 
마이리가 소스라치게 놀라며 말했다.
마이리의 포니테일이 소름이 돋아 천장에 솓구치는 것 같았다.
 
 
이메 미치카: 어? 왜 그렇게 놀라? 이것 때문에 그래~?
 
나즈마 마이리: 맞으니깐 그것 좀 내려놔!
 
가미네 우타로: 미..미치카 단원. 위험하니 함부로 만지지 말게나. 그거 내려 놓게.
 
이메 미치카: 치, 내가 뭐 했나? 그냥 칼 조사한건데~
 
 
미치카는 본인이 무슨 잘못을 한지 전혀 모르는 것 같았다.
미치카의 입장에서는 그냥 살펴본 것일 뿐인데 이 정도로 놀라는 마이리와 우타로가 이해되지 않을 것이고, 마이리와 우타로의 입장에서는 사람과 대화 할 때 칼을 드는 미치카가 이해가 되지 않을 것이다..
누군가가 다른 이에게 아집이 있다고 할 수도 있고, 그 이는 누군가에게 주관이 확실하다고 할 수도 있다.
타인의 시선과 다른 이의 생각은 이렇게도 다르다.
세상 가장 어려운 게 생각의 차이를 좁히는 것이다.
분명 본인들이 생각하는 정도의 차이는 각자 다르기에 서로를 이해하기는 쉽지 않은 법이다
 

지타 유토: 이 정도면 조리실의 조사는 다 한 것 같군요.

이코 하야오: 그럼 다음은 어딘지 알지~?
 
 
하야오가 간단한 수수께끼를 낸다는 듯이 말했다.
이 정도의 수준이 수수께끼의 범주에 들어갈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


나즈마 마이리: 어디긴 당연히 여기지!


그렇게 말하며 마이리는 당당히 식료품 창고로 보이는 곳의 문을 잡고 열었다.
우리의 시선이 약간의 긴장을 가진 채로 마이리와 식료품 창고 쪽으로 향했다.
딱 한 명만 빼고 말이다.
하야오는 팔짱을 낀 채로 여유롭게 마이리를 지켜보고 있었다.
분명 식사를 차릴 때 식료품 창고도 들어가 봤을테니 충분히 나올 수 있는 여유였다.
 

나즈마 마이리: 그... 와...


마이리는 지금까지 본 적이 없던 반응을 보였다.
부정에서 나오는 반응이 아닌 새로운 것을 발견한 것에서 나오는 긍정의 반응이다.
어째선지 뒷모습만 보았는데도 확신 할 수 있었다.


지타 유토: 마이리 씨 안은 어떻...


나도 식료품창고에 들어가자마자 매우 놀랐다.
음식이 바닥부터 천장까지 선반에 꽉 채워져 있었기 때문이다.
다른 것도 아닌 이런 것에 압박감을 느낀 것은 처음이다.


이코 하야오: 어때 깜짝 놀랐지~? 나도 처음 보고 놀랬다니깐~
 
가미네 우타로: 마치 물류센터 같네. 이렇게 많다니 놀랍네.
 

물류센터라는 우타로의 말에 옆에 서 있던 하야오의 표정이 살짝 굳은 것이 보였다.
아주 미세한 변화였지만 알아 차릴 수 있었다.
이래뵈도 나 자신의 눈썰미 하나는 좋다고 자부하기 때문이다.


이메 미치카: 이거 보기만 해도 든든한데?
 
 
드라마나 영화에서 여러번 본 듯한 물류센터를 작게 축소시킨 느낌이었다.
분류하는 방법도 꽤나 명확했다.
쌀과 같은 곡류와 물이나 음료수 같은 액체류들은 바닥에, 캔 통조림은 중간, 과자나 시리얼 같은 음식들은 상단에 배치되어 있었다.
그 뿐만 아닌 과일상자, 냉동쇼 케이스도 배치 되어 있었다.
조리실에 비해 좁은 공간을 최대한 효율적으로 이용한 것이다.
약간 비좁긴 했다만 사람 한 두명 쯤 지나갈 길은 있었다.


지타 유토: 좀 놀랍긴 하네요. 이 정도의 양이라니.
 
이메 미치카: 이 정도면 굶어 죽을 일은 없겠는데?
 
나즈마 마이리: 먹는 사람이 16명이라 금방 바닥 날 것 같은데?
 
지타 유토: 바닥 날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될 것 같습니다.
 
나즈마 마이리: 어? 왜?
 
지타 유토: 아까 모노젠틀이 매일 아침마다 음식들이 리필된다고 했으니깐요.
 
가미네 우타로: 이 많은 음식들을 하루만에 다 먹을 수는 없을테니 무제한이라 보는 것이 맞네.
 
이메 미치카: 누군가가 음식을 불태운다거나 하는 일만 안 일어난다면 괜찮을거야~
 
이코 하야오: 그런 비극적인 플래그는 세우지 말아줄래~?

이메 미치카: 응? 이것도 별로야?

나즈마 마이리: 비유인 건 알지만 지금의 상황이랑 뭔가 겹쳐지는 느낌이라 뭔가 불안해...
 
이메 미치카: 흠~ 그런가~ 난 아닌 것 같은데~
 
나즈마 마이리: 좀 진지하게 들어봐! 장난스럽게 받지 말고!
 
 
미치카와 마이리가 서로 대화를 하는 사이 나는 귀만 열어둔 채로 식료품 창고를 조사하고 있었다.
딱히 관리가 허술하게 되어 있다거나 유통기한 지난 음식들이 있는 것 같지도 않다.
 

가미네 우타로: 여기도 딱히 문제 될 건 없어보이네.
 
이코 하야오: 이 정도면 충분한 거 같은데 나갈까~?
 
지타 유토: 그럼 이제 나가죠.


그 이후에 우리는 조리실을 나온 다음 식당의 식탁 앞에 다시 모였다.


지타 유토: 식당 쪽 부근은 조사했으니 다음은 어디부터 조사해 볼까요?

나즈마 마이리: 난 어디든 괜찮은데 너흰 어때?

가미네 우타로: 개인실 쪽에서부터 도서관까지 차근차근 조사해 보는 것이 어떨까 싶네.

이코 하야오: 좋아 그렇게 하자~

이메 미치카: 좋았어~ 그러면 열심히 해보자고~!

나즈마 마이리: 어딘지는 알고 가는거야?

이메 미치카: 전자 학생 수첩에 지도 있잖아~


미치카는 전자 학생 수첩을 흔들어 보이며 말했다.
그녀의 말에는 에너지가 묻어 나왔다.


이코 하야오: 에너지 넘치는게 보기 좋단 말이야~


하야오는 뿌듯하다는 듯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이런 사람은 상당히 낯설게 느껴진다.
하야오의 눈에는 저런 미치카가 사랑스러울 수도 있지만 나에게는 아직 낯설 뿐이다.


나즈마 마이리: 사랑스럽다는 듯이 감상에 젖어 있을 시간은 없을 것 같아. 따라가야지!


마이리도 미치카를 따라가기 시작했다.
이에 뒤처질세라 우리 나머지 세 명도 그 둘을 뒤따라갔다.
소각장은 개인실이 있는 쪽 구석에 위치하고 있었다.


가미네 우타로: 소각장을 학생들이 있는 개인실 옆에 두는 것이 맞는건가? 기관지에 문제가 생기기라도 하면 어쩌려는 것인지.

지타 유토: 환풍구 같은 것이 있긴 하겠지만 그것만으로는 완벽히 차단 할 순 없을테니 말이죠.


우타로와 나는 어이가 없다는 듯이 말했다.
구석에 배치하는 것은 좋은 처사이지만 하필 개인실 쪽에 배치한 것이 이해가 가지 않는 것이다.
학생들에게 꽤나 신변을 신경 쓰는 듯한 모노젠틀과는 어느정도 상반 된 부분이다.
 

이코 하야오: 불쌍한 아코... 개인실이 하필 소각장 바로 옆 방이라니~ 너무 안타깝다~


아이코가 아코의 개인실 문 앞에 서서 말했다.
마치 대놓고 들으라는 듯이 말이다.

···
아코의 개인실에서는 어떠한 대답도 돌아오지 않았다.
대화하는 소리를 듣지 못한 것인지, 개인실에 없는 것인지, 아니면 들었는대도 대답을 회피하는 것인지는 알 방도가 없다.


이코 하야오: ··· 안 나오네~ 개인실에 없는건가~?

이메 미치카: 애초에 그런 수법에 나올거라고 생각한거야? 단순하네~
 
이코 하야오: 언젠간 이 개인실 문이 열리겠지~ 아코에게서 닫혀있는 마음의 문도 말이야~

 
하야오는 감상에 젖은 채로 말했다.
 
 
지타 유토: 역시 특이한 분이시네요.
 
가미네 우타로: 오히려 아이코 단원 다워서 보기 좋네.
 

감상에 젖어있는 하야오를 뒤로하고 나와 우타로는 소각장으로 들어갔다.
들어가자마자 보인 것은 조사를 하고 있는 마이리와 커다란 소각 기기, 우측 변면에 붙어있는 여러개의 환기구 정도였다.


가미네 우타로: 마이리 단원. 뭔가 특별한 게 있나?

나즈마 마이리: 아뇨 아직은 딱히 없어요. 소각로도 이상은 없어 보이고.

이코 하야오: 쓰레기 같은 것들은 여기서 소각하라는 거구나~?

지타 유토: 아직 작동은 하지 않는거죠?

나즈마 마이리: 전원을 키지 않았으니깐 작동은 안 하지.

이메 미치카: 그럼 볼 것도 딱히 없는 거 같으니깐 다른 곳으로 가자~


미치카의 말대로 소각장은 딱히 조사할 것은 없어 보였다.
하지만 그것은 하나의 가설에 불과하다.
가설은 주관적인 판단에서 출발한다.
우리가 어떤 문제에 대해 가설을 세울 때, 주로 직관과 경험을 바탕으로 한 추정에 불과하다.
그렇기 때문에 가설이 단순한 예상에 그치지 않고, 실질적인 타당성과 신뢰성을 가지려면 반드시 사실과의 일치 여부를 확인해야 하는데 조사가 필수적이다.
가설은 현실에 기반해야 의미를 가지기 때문이다.
 
 
지타 유토: 완벽하게 조사를 마친 것은 아니니 조금만 더 살펴봅시다.
 
가미네 우타로: 쉽다고 방심했다간 큰 코 다칠 수도 있네.
 
이코 하야오: 시간은 많으니깐 여유롭게 하자~

자이: 마음대로 하세요~ 난 보고 있을게~
 
 
그렇게 몇 분 더 소각장을 조사했다.
대충 발견한 것만 추려보자면 소각로의 사용방법이 적혀있는 메뉴얼, 대걸레나 양동이가 들어있는 캐비넷 정도...
딱히 큰 수확은 없었지만 알아서 나쁠 건 없었다.
 

가미네 우타로: 이 정도면 다 조사 한 것 같네.
 
이코 하야오: 그럼 이제 나갈까~? 뭔가 공기의 질이 좋지 않은 것 같은 기분이야~
 
이메 미치카: 그럼 빨리 다른 곳으로 자리를 옮겨보자 고고씽~

나즈마 마이리: 너 또 혼자 가지말고 같이 가자고! 이번에는 어디로 갈건데!
 
이메 미치카: 어디긴 어디야 창고지~

지타 유토: 미치카 씨, 마이리 씨 먼저 그렇게 막 가지 마세요.


먼저 나간 미치카와 마이리를 뒤따라 우리는 다음으로 가까운 창고 쪽으로 향했다.
하로를 처음 만났던 바로 그곳이다.
창고의 문을 열자 전등 주변에 반사된 먼지들이 내 눈에 들어왔다.
 
 
지타 유토: 분명 하로 씨를 이곳에서 처음 만났었죠 분명.
 
나즈마 마이리: 그치! 이런 어두운 분위기와는 어울리지 않는 귀여운 애가 있어서 놀랐었지!
 
지타 유토: 그땐 통성명만 하느라 잘 몰랐는데 확실히... 관리가 안 되어 있네요.
 
이메 미치카: 그냥 더럽다고 해~ 팩튼데 뭐~
 
지타 유토: ··· 네 더럽네요.
 
 
어쩔 수 없이 미치카의 말에 동조하였다.
소신을 유지하는 용기를 보여주는 것이 좋았을 수도 있지만 그런다면 관계에 약간의 흐트러짐이 발생 할 수도 있으니 이렇게라도 동조 하는 것이 싸게 먹힐 터였다.
 
 
이코 하야오: 먼지가 있는 걸로 봐선 그런 것 같네~
 
 
하야오가 찬장을 검지손가락으로 부드럽게 눌러 밀며 말했다.
 

나즈마 마이리: 창고라 쓸만한 잡동사니는 많은데? 폭죽, 부탄가스, 가스버너, 페인트, 나이프, 로프, 가위, 테이프, 나무판자, 못, 망치, 삽, 라이터까지.. 에.. 에킁챠!
 
 
마이리는 밀려오는 재채기를 참지 않고 뱉어냈다.
너무나도 급하게 조사를 하여 수많은 먼지가 휘날렸던 것이 폐해였던 것이다.
나 같았으면 재채기를 참으려고 노력 했을 텐데 마이리는 그러지 않았다.
물론 재채기는 반사작용 같이 자연스럽게 나오는 것이기에 참을 필요는 없지만 나는 재채기로 조사를 방해하고 싶지 않다.
 
 
나즈마 마이리: 에이씨 그지 같은 비염... 킁! 근데 이거 완전 살인도구 주는 거 아니야?
 
 
마이리가 팔로 코를 닦으면서 양 손에 물건들을 들며 말했다.
약간 흥분이 섞인 듯한 말투는 덤이고 말이다.
 
 
가미네 우타로: 의도가 뻔하다고 할 수 있네.
 
지타 유토: 하지만 이런 도구들이 살인에만 사용되는 것도 아니니 함부로 처리하기에는 무리가 있습니다.

이메 미치카: 근데 어질러 놨으면 원상 복귀 시켜놓지 그래~?
 
나즈마 마이리: 알았어 잠시만 아직 못 본 게..! 아오 손이 안 닿네.
 
 
마이리가 선반들 사이 틈에 팔을 집어 넣고선 분주하게 움직이며 말했다.
 
 
가미네 우타로: 꺼내지 못하는 것을 억지로 꺼낼 필요는 없네.
 
이메 미치카: 안달난 거 뒷모습만 봐도 알겠으니깐 나중에 하는게 어떠려나~?
 
나즈마 마이리: 어유 오케이 포기 포기! 나중에 하자 그래.
 
 
마이리는 분주하게 어질렀던 물건들을 원상 복귀 시켰다.
 

이코 하야오: 확실히 창고다 보니 위험한 도구들이 많네~ 이건 꼭 기억해야겠어~ 개수도 완벽하게 외워야겠고 말이야~

지타 유토: 기계 같은 것들도 보이는데 작동하지는 않네요.
 

나는 창고 가운데에 위치해 있는 커다란 뽑기 기계 같은 것을 살펴봤다.
하필 가운데에 배치한 것은 창고에 들어서자마자 제일 먼저 볼 수 있게 하기 위해서 일 것이다.
그런데 일반적인 캡슐 뽑기라고 하기에는 그 크기가 매우 컸다.
사람의 몸통 만한 정도의 크기가 아닌 인형 뽑기 기계 마냥 일반적인 사람보다 큰 크기였다.
심지어 내부의 모습은 불투명한 유리 때문에 전혀 보이지 않았다.


나즈마 마이리: 그렇네. 이렇게 큰 뽑기기계면 뭔가 있을 것 같기도 한데.

이메 미치카: 동전 같은 것도 없는데 어떻게 뽑겠어 그냥 관상용이지 뭐~

나즈마 마이리: 음.. 수상하다 수상해. 매우 수상해...


마이리는 본인의 턱을 만지며 연신 의심을 거두지 못했다.
의심은 마음속에서 자연스럽게 생겨나는 감정이다.
하지만 그에 사로잡힐수록, 진실을 향한 길에서 더 멀어지고, 스스로의 믿음을 의심하게 되기 마련이다.
의심을 내려놓고 명확한 시야로 다시 한 걸음을 내디딜 때, 비로소 어두운 안갯속에서 벗어나 더 큰 진실을 마주하게 된다.


지타 유토: 이쯤하고 이곳의 조사도 마무리된 것 같으니 장소를 옮깁시다.
 
이코 하야오: 다음은~ 세탁실로 가면 될 것 같아~
 
 
하야오가 본인의 전자 학생 수첩을 보고선 말했다.
세탁실은 우타로와 처음 만났던 장소다.
 
 
이메 미치카: 다음 스팟으로 레츠고!
 

미치카가 힘차게 창고의 문을 열고 나갔다.
 
 
나즈마 마이리: 이젠 따라가기도 지친다. 혼자 가라!
 
 
마이리도 따라가는 것에 지친 듯 하다.
말을 해도 듣지를 않으니 의미 없는 행동이라고 생각하여 염증을 느낀 것이다.
 
그렇게 우리 넷은 창고를 나가 각자의 발소리를 내며 세탁실 앞으로 향했다.
이미 열려 있는 세탁실로 들어가니 세탁실 특유의 물냄새와 세제냄새가 코를 찔렀다.,
분명 우타로를 처음 만났을 때도 맡은 향이고 일상 생활을 하면서도 많이 맡아본 향이다만 아직도 익숙치 않다.
 

가미네 우타로: 내가 깨어났을 땐 세제와 섬유유연제 같은 화학 용품 냄새가 심했네. 지금은 그나마 가라앉은 수준이네.
 
지타 유토: 저희를 처음 만났을 때와 비교하면 어떤가요?
 
가미네 우타로: 그때는 깨어난지 얼마 되지 않았어서 별 차이 없었네. 내가 집합 방송을 듣고 세탁실 문을 열고 나왔어서 그나마 빠진거네.
 
이메 미치카: 내가 왔을 때는 닫혀 있었는데 이상하다?
 
나즈마 마이리: 모노젠틀이 닫았나 보지 그럼. 쓸데없이 문단속은 철저해. 냄새는 빠지게 좀 해두지 좀.
 
이코 하야오: 그래도 시설은 좋잖아~ 건조기에 세탁기도 와류식이랑 드럼으로 종류도 나눠져 있고~
 
 
그렇게 말하며 하야오는 세탁기를 두드렸다.
 
 
나즈마 마이리: 잠깐만 이거 완전 비싼 브랜드껀데?
 
이코 하야오: 음? 어떻게 아는거야~?
 
나즈마 마이리: 상표 없이 디자인만 봐도 어느 회사 껀지는 알아. 그런데 이걸 각각 대여섯대 씩 놨다고? 왜? 그냥 싼 브랜드로 삥땅 쳐도 되는거잖아.

모노: 왜냐! 모노젠틀은 학생들을 아끼는 진정한 참선생 이니깐요.
 
 
모노젠틀은 갑작스럽게 나타나더니 한 문장을 내뱉고선 사라졌다.

 
나즈마 마이리: 그..그렇게 참선생인 양반이 왜 감금을 하고 살인을 강요하냐고! 나 참 이해 할 수가 없네!
 
가미네 우타로: 해코지 당할 수도 있으니 쓸데없는 감정 소비는 줄이게.
 
이메 미치카: 그래도 우리에게 나쁠 건 없잖아~?  좋은 게 좋은 거지~
 
 
모노젠틀은 너무 쓸데 없이 많은 것을 주고 있다.
본인만의 시간을 보낼 수 있게 해주는 개인실, 깔끔한 청결 관리 시스템, 매일마다 보충 되는 식량들, 여가 시간을 보낼 수 있는 체육관까지...
사실상 모노젠틀은 해 줄 수 있는 모든 것을 다 해줬다.
하지만 살인을 강요 받는 생활이라는 것.
그 하나 때문에 모든 것이 역으로 작용하고 있다.
 
좋게 해주면 이런 상황에 좋게 해주냐고 불만이 나온다.
안 좋으면 설상가상으로 환경도 열악하다고 불만이 터져 나온다.
모노젠틀이 참선생 혹은 좋은 시설과 관련된 언급이 나왔을 때 참지 못하고 개입을 하는 이유가 있는 것이다.
지금 본인이 과시하고 자랑 할 수 있는 것은 그것 뿐이니 말이다.
 
 
지타 유토: 더 이상 조사 할 것은 없어 보이니 나갈까요? 이곳의 냄새가 좀 별로네요.
 
이코 하야오: 그래 이제 나가자~ 사실 나도 속이 안 좋아지는 것 같거든~
 
이메 미치카: 세제 냄새 좋지 않아~? 꽃향기 나고 좋잖아~
 
지타 유토: 너무나 과하고 인공적인 향이라 전 별로.
 
 
그렇게 나는 가장 먼저 세탁실을 빠져나왔다.
인공적인 냄새가 나지 않는 공기를 마시니 속이 안정되는 것 같다.
그렇게 한두 명씩 세탁실을 빠져나왔다.
 
 
가미네 우타로: 그럼 다음으로 가까운 곳은 보건실이네.
 
이코 하야오: 토마의 상태가 어떠려나 하로의 말로 들으면 많이 심각한 것 같던데~
 
나즈마 마이리: 토마 정도의 피지컬이 되니깐 저 정도로 끝난거지. 우리였으면... 어우 상상하기도 싫다.
 
이메 미치카: 아마 신체 부위 하나 쯤은 날아갔겠지~
 
나즈마 마이리: 그런 섬뜩한 말 하지 말라니깐! 그래서 내가 일부로 말 안 한건데!
 
이메 미치카: 히히 빨리 따라와~ 

 
그렇게 우리는 미치카를 따라 보건실로 향했다.
막상 보건실 앞에 도착하니 문을 열기 망설여졌다.
설마 간호하는 이가 없는 사이 안 좋은 일이 일어났으면 어떡하지 라는 불안감에서 나오는 망설임 말이다.
 
(똑똑-)
 
···
잠시 동안 기다려 봤지만 안에서는 어떠한 대답도 돌아오지 않았다.
 
 
이메 미치카: 노크 왜 해? 누구 있어~?
 
지타 유토: 아뇨. 그런 건 아니지만 혹시 모르죠. 안에 아코 씨나 쇼타 씨가 있을지.
 
 
사실 버릇 때문에 자연스럽게 나온 행동이었지만 유연하게 잘 넘어간 것 같다.
아무도 없는 방이라고 해도 일단은 노크부터 하고 본다.
나는 어렸을 때부터 다른 방에 들어갈 때는 노크를 하는 것이 에티켓이라고 배워왔다.
노크를 하는 것은 우리가 방안에 있는 사람이 서로 당황스러운 표정으로 바라보게 됨을 미연에 방지하자는 차원의 하는 것이다.
부모님의 말에 의하면 나는 어렸을 때 부터 닫혀있는 문만 보면 일단은 노크를 하고 보는 경향이 있었다고 한다.
그 안에 사람이 있던 그 안에 아무도 없던 지 말이다.
그 버릇이 지금까지 이어져 온 것이다.


이메 미치카: 실례합니다~
 

'드르륵-'

미치카가 나를 지나가 보건실의 문을 열더니 안으로 들어갔다.
그 안에는...


마 리코: ···


토마로 추정되는 온 몸에 붕대로 감싸고 있는 누군가가 병원 침대에 누워 있었다.
붕대 사이로 보이는 감긴 눈과 압도적인 체형만이 토마라는 것을 알 수 있게 하는 표시였다.


지타 유토: 토마 씨...
 
가미네 우타로: 나으려면 좀 오래 걸리겠네. 불쌍한 토마 단원.
 
나즈마 마이리: 하... 그러게 왜 급발진을 해서...
 
이메 미치카: 근데 이건 자업자득 아니려나~?
 
이코 하야오: 장본인이 못 듣는다고 해서 그런 말 쉽게 하는 거 아니야~
 
 
나는 연민의 마음으로 토마를 바라봤다.
다른 사람이 느끼는 마음은 무엇일지 모르겠으나 내가 느낀 마음은 '연민'이었다.
동정은 ‘나와 다른 사람’이라는 생각에서, 연민은 ‘나와 같은 사람’이라는 생각에서 기반한 것이다.
그렇다면 대부분 토마를 바라보는 시선은 동정이다.
누가 폭발에 휘말려 온몸에 붕대를 감고 의식불명인 상태로 있어 본 적이 있겠는가.

토마가 겪은 일에 눈물을 흘리는 이는 없었으며, 토마가 겪은 일을 자신들이 겪게 된다면 차라리 죽는 편이 낫다고 말하는 이도 있으니 말이다.
누군가는 토마에게 혀를 차고 연민이 아닌 동정의 시선을 보낸다.
토마는 다른 이들이 나를 이해하고 같은 마음으로 봐주기를 원할 것이다.
하지만...
"유토, 사람들이 가끔 착각하는 게 있어. 동정은 나쁘고, 연민은 굉장히 선하다는 생각. 그런데 연민은 누군가를 불쌍하고 가련하게 여긴다는 마음이거든. 누군가 불쌍하다는 건 그 사람이 나보다 못하다는 것.  꼭 그 상대는 도움을 필요로 하는 상태, 즉 모자람을 뜻해서 나는 정말 싫었어."
 
 
누군가가 나에게 속삭이듯 부드럽게 말했다.
 
 
"누군가 날 연민한다는 건 무언가 하등하고 낮은 존재가 되는 것 같았어. 사회에서 익숙한 형태가 아닌 소수자라는 건 그저 불편한 거지 불행한 건 아니거든. 그런데 반대로 동정은 달라. 같을 ‘동’, 감정 ‘정’. 너와 같은 감정을 느낀다. 오히려 나한테는 동정이라는 뜻이 공감과 똑같은 뜻인 것 같아. ‘너의 아픔에 공감한다. 너의 아픔을 나도 느낀다’고 말하는 건 상대를 외롭게 고립시키지 않지. 아마 너와 나도 소중한 사람이라는 존중이 전제로 존재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해. 그러니깐 우리끼리는 연민이 아닌 동정으로 바라보자. 진정한 동정을 할 수 있을 때 변화는 시작 되었을 지도 몰라."

 
지타 유토: ···
 
나즈마 마이리: 유토 군..? 너 왜 그래?
 
지타 유토: 네? 제가 왜...
 
나즈마 마이리: 너... 되게 슬퍼 보였어. 마치... 소중한 사람이 다쳤다는 듯이.
 
지타 유토: 아닙니다. 잠시 생각 할 게 있어서 그랬습니다.
 
나즈마 마이리: 알았어. 그럼 이제 조사하자.
 
 
진지한 생각은 이쯤 해두고 조사에 집중하기로 했다.
지금 중요한 것은 조사지 다른 것이 아니다.
이미 다른 분들은 조사를 진행하고 있었다.


이코 하야오: 어디보자~


하야오가 침대 옆 장식대에 있는 전자학생수첩을 들고선 전원을 켰다.


이코 하야오: '토마 리코'... 제대로 전달해 준 거 맞네~

나즈마 마이리: 엥? 아이코 군 어떻게 킨거야?
 
이코 하야오: 음~? 뭐가~?
 
나즈마 마이리: 지문인식으로 켜지는 거 아니였어? 어떻게...
 
이코 하야오: 아~ 잠금장치 해제만 지문인식이지 키는 것 자체는 누구나 할 수 있어~ 시계는 화면 키면 바로 보이잖아~?
 
나즈마 마이리: 아 그런거였어? 잠깐 너 그건 어떻게 알고 있어?
 
이코 하야오: 아까 식당에서 음식 준비 할 때 기나오 껄로 확인해 봤어~ 흔쾌히 허락해 주더라고~ 솔직히 전자 학생 수첩이라는 것도 별로 믿음이 가지를 않았거든~
 
 
생각 의외로 하야오는 꽤 많은 것을 의심하고 있었던 것 같다.
 
 
가미네 우타로: 여기도 딱히 중요한 건 없어 보이네.

지타 유토: 간단한 의료용 매스, 붕대, 반창고, 진통제, 연고, 심장제세동기, 알코올솜, 주사기 등등 의료용품들 정도 뿐이네요.

가미네 우타로: 이 미니 냉장고는 뭔가?


그렇게 말하고선 우타로는 몸을 숙여 보건실 구석에 있는 미니 냉장고를 열었다.
그 안에는 수많은 수혈팩들이 존재하고 있었다.


이메 미치카: 기억 할 게 늘었네~ 완전 언럭키~
 
 
냉장고 안에 들어있는 수혈팩들은 A형, B형, AB형, O형 총 4개의 라인으로 각각 5개씩 구성되어 있는 것 같다.
'같다' 라는 표현을 쓴 이유는 딱 하나의 라인만을 제외하고 나머지는 전부 5개씩 총 19개가 있었기 때문이다.
바로 B형 라인에 1개가 비어있었다.


지타 유토: 다른 라인들은 다 5개씩 있는데 왜 이 라인만 4개밖에 없을까요?

이코 하야오: 지금 토마가 수혈받고 있어서 하나가 비는 거 아닐까~?


그렇게 말하고선 하야오는 손으로 수혈을 받고 있는 토마를 가리켰다.
나는 이를 보고선 바로 내 전자 학생 수첩의 비밀번호를 열고선 우리들의 프로필이 적혀 있는 프로필 란에 들어갔다.
그 뒤 나는 토마의 프로필을 확인해 보았다.


<초고교급 유도선수>
토마 리코 (斗真 莉子)
생일: 10월 29일.
키: 211cm. 몸무게: 141kg. 가슴둘레: 133cm.
혈핵형: B형
좋아하는 것: 동생들
싫어하는 것: 무력한 인간
좋아하는 음식: 두부
싫어하는 음식: 과다할 정도로 달고 기름진 음식


나는 재차 한 번 토마의 프로필을 자세히 확인하였다.
토마는 분명히 B형이다.
이 프로필의 정보가 잘못 된 것이 아닌 이상에 말이다.


지타 유토: 확인해 보니깐 토마 씨는 B형이네요. 지금 하나가 비는 것도 B형이고요. 그럼 이해가 되네요.

나즈마 마이리: 근데 이 정보 정확한 거 맞지?

이메 미치카: 모노에몽~ 듣고 있지~?
 
 
미치카가 허공에 대고 모노젠틀을 불렀다.


모노: 부르셨군요.
 
이메 미치카: 어라? 진짜 오네~
 
모노: 결론부터 말씀 드리자면 이 프로필에 거짓된 정보는 없습니다.
 
가미네 우타로: 신용 해도 되는 것 맞나?
 
모노: 전 이런 걸로 장난질 안 칩니다. 학원장의 명예를 걸고 다짐합니다.

지타 유토: 근데 이런 정보는 다 어디에서 얻은거야? 뒷조사라도 한 거야?

모노: 뒷조사라뇨 그런 거 아닙니다. 여러분들의 혈액형 쯤이야 인터넷을 뒤지면 금방 알 수 있는 정보들이죠. 그럼 전 이만.


그렇게 말하며 모노젠틀은 사라졌다.


나즈마 마이리: 의심스럽긴 한데 저거... 근데 비어 있으면 다시 채워놔야 하는 거 아니야?

이메 미치카: 냉장고에 있는 거 다 쓰면 채워놓는다거나 그런 거 아닐까~?

지타 유토: 그것도 물어보면 되겠죠. 모노젠틀 잠시 나와봐.

모노: 정확히 10.38초만에 저를 다시 부르셨군요. 이번에도 결론부터 말씀드리자면 총 수혈팩의 개수가 10개 이하가 됐을 경우 제가 그 자리에서 즉시 보충 시켜주니 걱정 안 하셔도 됩니다.

가미네 우타로: 그럼 11개까지는 보충 되지 않는다는 건가?

모노: 네 그렇습니다.

나즈마 마이리: 알았으니깐 이제 사라져.


모노젠틀은 마이리가 사라지라는 말을 듣고 곧바로 사라졌다.


지타 유토: 그럼 계속 조사합시다.
 

우리는 보건실의 조사를 계속했다.
오히려 창고와 비슷한 수준으로 살펴 볼 것이 많았다.
창고는 잡동사니 같은 실생활의 활용이 떨어지는 물건들이 많았다면 보건실에서는 물건들의 갯수 자체는 적었지만 실생활의 활용이 많을 물건들이 많았다.
 
 
가미네 우타로: 여기도 이 정도면 다 된 것 같네.
 
나즈마 마이리: 생각보다 알찬데? 의외로 적을 줄 알았는데.
 
이메 미치카: 그럼 다음으로 고고~
 

조사를 마치고 우리는 보건실 밖으로 살며시 빠져나왔다.
그 다음은 좌측에 있는 본관으로 갈 차례다.
 
 
나즈마 마이리: 여긴 볼 때 마다 느낌이 이상해... 벽지 색도 그렇게 대비가 너무 심하잖아.
 
이메 미치카: 쫄?
 
나즈마 마이리: 하, 쫄은 무슨 전혀 안 쫄았거든?
 
 
본관의 벽지는 불그스름한 검은색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굳이 따져보자면 적갈색 같은 느낌이다.
 
 
이코 하야오: 그럼~ 저기부터 조사해볼까~?
 
 
하야오는 손가락으로 어느 교실들을 가리켰다.
1-A, 1-B, 1-C 라고 적혀있는 꽤나 익숙한 교실들이었다.


지타 유토: 저 교실은 제가 깨어났던 장소입니다. 분명 1-B 반이었죠.

나즈마 마이리: 나도 교실에서 깨어 났었는데 나는 1-C반이었어. 아코 군이랑 같이 있었고.

가미네 우타로: 그럼 단원들이 깨어나고 교실에서 특별히 발견한 게 있나?

지타 유토: 아뇨 딱히 없었어요. 관리가 안 되서 먼지가 있다는 것 이외에는...

이코 하야오: 그래도 대충 할 순 없으니 각각 흩어져서 교실을 조사해 볼까~?

이메 미치카: 그러면 2명, 2명, 1명으로 나누게~?

이코 하야오: 응~ 무슨 문제라도~?

이메 미치카: 근데 만약에 만약에 정말 만약에 그 1명의 누군가가 교실에서 뭔가를 발견했는데 우리에게 말을 안 하면 어떻게 될까~? 우릴 죽이려는 계획을 짜려고 말이야~ 그걸 숨기는 거지~


미치카의 소름 돋는 문장에 잠시 우리는 얼어붙었다.
갑자기 이 공간이 추워진 것만 같다.


나즈마 마이리: 야... 말을 뭘 그렇게 무섭게 해.
 
이메 미치카: 내가 또 틀린 말 한거야~?
 
가미네 우타로: 그건 아니네. 하지만... ··· 맞는 말 인 것 같네.
 
 
우타로는 잠시 고민하는 듯 싶더니 미치카의 말에 동의했다.
 
 
지타 유토: 어느 정도는 맞는 말입니다. 지금 저희가 처한 상황은 명백히 살인 학급 생활이니 어느 정도의 의심도 필요합니다.

이코 하야오: 그러면 2명, 3명씩 나누고 나머지 한 반은 5명이서 조사하도록 할까~?

지타 유토: 좋아요. 그렇게 합시다.


그렇게 인원을 나눠 1-A반은 나와 마이리, 하야오가 조사하기로 했고, 1-B반은 우타로와 미치카가 조사하기로 하였다.
그렇게 우리는 배정 받은 교실에 들어가 약간의 수확이 있기를 기대하며 조사를 진행한다.


지타 유토: 역시나 뭔가가 있지는 않네요.

이코 하야오: 그러게~ 다른 곳들은 깨끗했는데 유독 교실이랑 창고만 먼지가 가득하네~

나즈마 마이리: 창고는 그렇다 쳐도 교실은 왜 청소를 안 한 걸까?
 
이코 하야오: 음~ 글쎄~ 잘 모르겠지만 그렇게 중요하지 않은 거에 스트레스 받을 필요는 없을 것 같아~
 
 
하야오는 아무렇지 않게 한 말이겠지만 저런 사소한 배려심이 나에게는 도움이 된다.
정말 사소하고 소심하다.
누구나 다 할 수 있는 일들이다.
하지만, 원래 누구나 다 할 수 있는 것을 하는 것이 어쩌면 더 어렵고 실천하기가 어려운 경우가 많다.
굳이 내가 아니어도 누군가가 해줄 수 있는 일들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더 어려우며 그래서 더 사소하게 보인다.
 
 
지타 유토: 음? 혹시 지금 창가 쪽 조사하신 분 계신가요?
 
나즈마 마이리: 응? 난 아닌데.
 
이코 하야오: 나도 아직~ 무슨 문제 있어~?
 
지타 유토: 이쪽만 부자연스럽게 먼지가 쓸려있어서요. 손가락으로 쓴 흔적 같아요.
 
나즈마 마이리: 누가 먼저 들어와서 조사 한 거 아니야? 아코 군이나 쇼타 군이.
 
지타 유토: 다른 곳은 먼지가 쌓여있는데 창고 쪽만 먼지가 없어서 그렇습니다. 마치 창고 쪽에만 무언가가 있었다는 듯이...
 
이코 하야오: 나중에 만났을 때 물어보자~ 지금은 조사가 우선이니깐~
 
 
약간의 수상함을 뒤로 하고 교실의 조사를 마무리하고 교실을 빠져나왔다.


가미네 우타로: 단원들 왔는가.
 
이메 미치카: 하이하이~
 

우타로와 미치카가 먼저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이코 하야오: 혹시 조금 오래 기다리게 했나~?

이메 미치카: 아니! 우리도 나온 지 얼마 안 됐어~

나즈마 마이리: 그쪽은 뭔가 없었어?
 
가미네 우타로: 딱히 없었네. 먼지가 쓸린 것 같은 흔적들만 제외하고는 말이네.
 
지타 유토: 그쪽도 먼지가 쓸린 흔적이 있었나요?
 
가미네 우타로: 그쪽도 라는 건... 설마 A반도?
 
지타 유토: 네. 창고 쪽에 먼지가 쓸린 자국이 있었습니다.
 
이코 하야오: 아마 동일한 사람이 그랬나 본데~? 조사한 방식이 똑같은 거 보니깐~

이메 미치카: 그럼 C반도 똑같을지 조사해 보자고~!


그렇게 말하면서 미치카가 힘차게 C반 문을 열었을 때 그 안에 누군가가 보였다.


나즈마 마이리: 어라?

아코 료타: ···


안에는 아코가 교실을 뒤지고 있었다.
아코는 우리를 노려보는 눈으로 바라봤다.

 
이메 미치카: 아코 안녕~
 
아코 료타: ···

나즈마 마이리: 엥? 아코 군? 왜 거기서 나와?

아코 료타: ···
 

아코는 마이리와 미차카의 말에 어떠한 관심도 주지 않고 다시 교실을 뒤지기 시작했다.


지타 유토: 저기 아코 씨? 아코 씨도 조사를 하고 계신 거예요?

아코 료타: ··· 하...


내 말을 들은 아코는 한숨을 깊게 쉬며 손을 들어 보이며 무언가를 보여줬다.
무언가가 그려진 황금빛 동전이 교실의 조명을 받아 밝게 빛났다.
 

가미네 우타로: 그게 뭔가 아코 단원? 동전?

모노: 맞습니다! 동전 즉 모노코인, 모노메달이라고도 하죠.
 
 
모노젠틀이 멀리 떨어져 있는 아코와 우리들 사이에 나타났다.


나즈마 마이리: 아잇 깜짝이야! 갑자기 나오고 그래!

모노: 여러분들이 드디어 모노메달을 발견하셨군요!

지타 유토: 드디어라니? 뭐야 그 마치 찾길 바랬다는 식의 말투는.

모노: 그야 찾기를 기다리고 있었으니 말이죠. 이 메달 같은 경우는 여러분들이 경품을 뽑을 수 있게 해주는 메달입니다!
 
이메 미치카: 경품? 여기가 유원지야~?
 
이코 하야오: 그런 건 언제 배치한거야~? 몇 시간 전만 해도 없었던 것 같은데~

모노: 입학식을 마치고 제가 손수 본관과 체육관, 야외 등등 모든 공간에 다양하게 배치해 두었죠.
 
지타 유토: 다양한 곳? 우리가 조사한 그 어느 곳에도 메달은 없었는데?
 
모노: 그럼 여러분들이 발견하지 못한 거겠죠. 아니면 누군가가 미리 발견을 했다거나.
 
 
식당만 해도 모두가 모여서 같이 음식을 먹고 정리를 할 때도 메달 같은 것은 없었다.
만약 누군가가 발견 했었다고 한다면 지금처럼 모노젠틀이 나타났을 것이다.
그렇다고 한다면 우리 모두가 식당에 모이기 전에 누군가가 식당에 있는 메달을 발견한 것이다.
 
 
모노: 그게 중요한 게 아니고 여러분들 아까 창고에서 어떤 작동하지 않는 물건을 보지 않으셨습니까?

가미네 우타로: 가운데에 배치 되어있던 뽑기기계 말하는 건가?
 
지타 유토: 아마 그거겠죠. 근데 그게 왜.

모노: 그 기계의 투입구에 메달을 넣고 손잡이를 돌리면 경품이 나옵니다!
 
나즈마 마이리: 뭐야 진짜 뽑기기계였어?

모노: 네 맞습니다. 하지만 일반적인 뽑기 기계보다 훨씬 크고 경품들도 다양합니다!

나즈마 마이리: 그런 걸로 친목이나 다지라는 거야?

모노: 네. 그러라고 만든 겁니다. 어차피 여기에 오랫동안 지내게 되실텐데 친목 다져서 나쁠 건 없겠죠. 맘에 드는 상대에게 자신이 뽑은 경품을 선물해 보세요!

모노: 참고로 아코 학생이 처음으로 메달을 발견했고 체육관에 있는 기나오 학생이 2번째, 여러분들이 3번째...

지타 유토: 좋아 알겠으니깐 그런 사족 달지 말고 사라져.

모노: 아이고 매정하셔라 알겠습니다. 그럼 저는 이쯤에서 퇴장하겠습니다. 그럼 이만.


그렇게 말하면서 모노젠틀은 사라졌다.

 
이코 하야오: A반이랑 B반에 먼지가 쓸린 흔적도 아코가 그랬나보네~ 메달을 찾으려고 말이야~

지타 유토: 저기 아코 씨? 혹시 괜찮으시다면 저희와 함께 조사하지 않으실... 어라? 아코 씨?


내가 아코에게 동행을 제안했지만 아코는 이미 사라진 후 였다.
아마 모노젠틀이 설명을 하고 있던 사이에 사라진 것 같다.
아코는 이미 그 설명을 한 번 들었을테니 굳이 또 들을 필요는 없었을 것이다.


나즈마 마이리: 뭐야 또 어디간거야? 진짜 우리랑 있기 싫은가?

가미네 우타로: 진짜 신출귀몰 하다고 할 수 있네.

이코 하야오: 뭐 어쩔 수 없지~ 우리는 또 조사해야 하지 않겠어~?

이메 미치카: 좋아~ 그럼 다음은 어디로 갈래?
 
나즈마 마이리: 지도랑 가장 가까운 통로 쪽으로 가보자.


사라진 아코를 뒤로하고 우리는 또다시 조사를 속행하였다.
다음은 이전에 봤던 거대한 엘리베이터가 있는 쪽이었다.


지타 유토: 다시 봐도 엄청나게 큰 엘리베이터네요.
 
가미네 우타로: 이렇게 까지 클 필요는 없을 텐데 의문이네.

나즈마 마이리: 근데 이 엘리베이터는 언제 탈 수 있는거지? 2층 개방되면 탈 수 있나?

이코 하야오: 그것도 모노젠틀에게 물어보면 알 수 있겠지~? 모노젠틀~
 
 
하야오가 허공에 손을 모아 말했다.
 

모노: 이 엘리베이터 같은 경우는 학급재판장을 가는데 이용됩니다.

이메 미치카: 학급재판장이 어디 있길래 이런 큰 엘리베이터를 타는거야~?

모노: 글쎄요? 뭐 며칠 안에 알게 되겠죠.

나즈마 마이리: 며칠 안이라니? 앞으로도 영원히 없을 건데?

모노: 네 뭐 마음대로 생각하시고 질문 다 하셨으면 저는 퇴장하겠습니다.


모노젠틀은 그렇게 말하고 또다시 사라졌다.
그렇게 우리는 엘리베이터를 뒤로하고 다음으로 가까운 시청각실로 향하였다.
 
 
이메 미치카: 문이여 열려라~
 
 
이번에도 미치카가 먼저 나서 문을 열었다.
지난번에 시청각실로 갔었을 땐 아야카가 안에서 문을 잠그고 있어 들어가진 못하였지만 이번엔 달랐다.
안에는 수많은 컴퓨터들과 천장에는 프로젝터가 붙어있었다.


나즈마 마이리: 이 컴퓨터 설마 켜지나?

이메 미치카: 설마 켜지겠어~?

지타 유토: 아야카 씨가 켜지지 않는다고 했었는데 켜질 리가...


내가 말을 하던 사이 미치카가 컴퓨터의 전원 버튼을 눌렀다.

'위이이이잉'


이메 미치카: 얼라리? 켜지네~?

나즈마 마이리: 뭐야 이거 왜 켜져?

지타 유토: 분명 아야카 씨가 켜지지 않는다고 하셨는데...

모노: 그땐 제가 일부러 전원을 꺼둔 거랍니다.


그 한마디를 하고는 모노젠틀은 사라졌다.


이코 하야오: 뭐 그렇데~

가미네 우타로: 뭔가 정보 같은 게 있는가?


설레는 마음으로 붙어 모여 우리는 컴퓨터의 화면에 집중하였다.
어쩌면 이곳을 빠져나갈 수도 있다는 작은 희망을 가지고 말이다.
하지만 인터넷은 연결되어 있지 않았고 바탕화면에 설치되어 있는 기본앱조차 없었다.


지타 유토: 이러면 아무것도 할 수가 없는데..

나즈마 마이리: 모든 권한이 막혀있어. 개발자 도구도 안 되고 이렇게까지 하시겠다?


그렇게 말하면서 마이리는 잠시 골치가 아프다는 듯 컴퓨터를 이리저리 만져보았다.
 

나즈마 마이리: 하! 내가 여기서 포기할까봐? 다른 수단도 있거든..!

이코 하야오: 다른 컴퓨터들도 똑같은 건가~?

이메 미치카: 아마 그렇지 않으려나? 모노젠틀이 허술하게 어떤 컴퓨터에는 설정을 하지 못했다거나 그러지는 않았을 것 같은데~

지타 유토: 그래도 확인을 안 할 수는 없으니 전부 켜서 확인해 보죠.


그렇게 몇 분에 걸쳐 모든 컴퓨터들을 켜서 확인해 보았지만 다른 점은 없었다.

 
이메 미치카: 역시 아무것도 없네~ 시간만 날렸어~
 
가미네 우타로: 마이리 단원. 혹시 뭐 알아낸 거 있는가?

나즈마 마이리: 없어요... 무능해서 죄송합니다...

가미네 우타로: 자책하지 말게. 괜찮네.
 
이코 하야오: 켜진다는 것 만으로도 다행이라고 생각하자~
 
지타 유토: 그럼 다른 곳으로 장소를 옮기죠.


그렇게 우리는 시청각실을 나와 2층으로 향하는 계단 쪽으로 나아갔다.


나즈마 마이리: 이 창살은 아직까지도 그대로네.

이메 미치카: 뭐 어떤 조건 같은 걸 만족해야 열리는 거려나~?
 
 
미치카가 손가락으로 창살을 두드리며 말했다.
창살은 청아한 쇠소리를 내며 건물에 울려퍼졌다.


모노: 그것 또한 제가 알려드리죠.

나즈마 마이리: 이젠 놀랍지도 않다야.
 
가미네 우타로: 이젠 타이밍도 언제인지 알 지경이네.

모노: 이 계단 같은 경우는 여러분들이 학급재판을 깨 나가실 때마다 한 층씩 해금됩니다.

지타 유토: 그럼 본관은 총 몇 층으로 구성되어 있는 거야?

모노: 총 5층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이코 하야오: 음 생각보다 낮은데~?
 
지타 유토: 분명 학급재판은 최종 2명이 남을 때까지 진행한다고 했는데 5층까지 밖에 없어?

모노: 진짜 어찌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르시는건지...

나즈마 마이리: 어? 뭐라고?


그렇게 모노젠틀 매우 작은 목소리로 속삭이더니 황급히 사라졌다.
지상이 5층까지 밖에 없는거면 지하도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지타 유토: 뭐라 한 건지 제대로 못 들었네요.

가미네 우타로: 필요한 정보는 전부 얻었으니 이제 가도록 하지.


그 다음으로 우리는 위쪽에 있는 대욕탕 쪽으로 향하였다.


이메 미치카: 들어가도 되려나~? 실례합니다~


그렇게 미차카가 대욕탕에 걸려있던 천을 들춰내고 안으로 들어가려던 그때.


모노: 여러분들 잠깐! 대욕탕은 현재 이용하실 수 있는 시간이 아닙니다.


그렇게 말하고선 모노젠틀은 어떠한 팻말을 꺼내 벽에 걸었다.
'오후 4시~ 오후 10시까지 이용가능'이라 적혀있는 팻말을 말이다.
 
 
나즈마 마이리: 왜 하필 4시부터야? 이유가 있어?
 
모노: 그 전의 시간들은 대욕탕의 청결을 위한 정리시간이라고 생각하면 될 것 같습니다.
 
이메 미치카: 오후 4시부터? 지금이 몇 시지~?

모노: 지금은 오후 3시 23분입니다.

가미네 우타로: 아직 시간이 조금 남았네.

이코 하야오: 그럼 나중에 모두가 모였을 때 대욕탕에 대해 다시 이야기해 보자~

지타 유토: 네 그렇게 하도록 하죠.

 
뭔가 이상했다.
분명 아침에 기나오와 타다요시가 대욕탕에 나오는 것을 나와 마이리, 아코가 확실히 봤기 때문이다.
마이리는 지금 그것을 잊어버린 것 같지만 말이다.
이에 관한 건 기나오와 타다요시에게 따로 물어보기로 하고 우리는 마지막으로 도서관으로 향하였다.


나즈마 마이리: 이 문은 볼 때마다 압도적이네...
 
이메 미치카: 문을 열어라~
 

미치카가 거대한 맹수가 그려진 도서관의 문 손잡이를 잡고 문을 열었다.
도서관은 천장에 있는 창문의 빛을 받아 밝게 정중앙에 있는 피아노를 비추고 있었다.
바닥에는 고풍적인 빨간색 카펫이 깔려있었다.
 
도서관은 원형의 모양으로 2층까지 존재하고 있었으며 한 10미터 정도의 높이는 되어 보였다.
천장까지의 높이는 13미터 정도?
그 벽면 전체가 책으로 빼곡히 채워져 있었다.
책장으로도 모자랐는지 바닥에도 수많은 책들이 있었다.
마치 바벨의 도서관이 실존한다면 이런 느낌일 것 같았다.
 
 
이코 하야오: 이런 고풍적인 분위기 너무 좋다~

가미네 우타로: 도서관이 엄청나게 크네.


그렇게 말하며 우타로는 자연스럽게 피아노 쪽으로 접근했다.


가미네 우타로: 커다란 그랜드 피아노네...


그렇게 말하면서 우타로는 홀린 듯 피아노를 어루만졌다.


나즈마 마이리: 이 정도의 책이면 평생 읽고도 남겠어.

지타 유토: 모두들 도서관이 워낙 넓으니 빨리 조사합시다.


'띵~'

청아하게 울리는 피아노 소리에 우리는 중앙에 있는 피아노를 바라보았다.
우타로가 피아노 의자에 앉아 조심스럽게 연주를 하고 있었다.
모두들 아무 말 없이 잠시동안 우타로를 지켜보면서 연주를 감상하였다.
이 고풍적인 분위기와 어울리는 클래식이었다.
클래식은 잘 알지 못했지만 마음을 정리해주는 매우 감미로운 노래임은 분명했다.


가미네 우타로: ··· 모두들 잘 들어주었나?

이코 하야오: 브라보~! 아름다운 연주였어~


하야오가 그렇게 말하면서 박수를 쳤다.


나즈마 마이리: 와 진짜 좋다... 즉석으로 연주하시는 거 멋있네요!

가미네 우타로: 모든 악기를 다룰 줄 알아야 군악대장이라 할 수 있네. 그게 내 자부심이고 말이네.
 
 
우타로는 본인의 손을 꽉 쥐며 말했다.


이메 미치카: 이게 내가 듣는 마지막 장송곡은 아니겠지~?

나즈마 마이리: 또또! 무서운 소리!

지타 유토: 그럼 조사를 시작하도록 합시다.

 
우타로의 연주에 기운을 받아 모두가 더욱더 열심히 조사에 임하기 시작했다.
1층에는 철학, 종교, 사회, 과학, 음식 등등의 책들이 일본어를 포함하여 수많은 언어들로 다양한 저자들의 책들이 위치하고 있었다.


나즈마 마이리: 기술과학이라.. 읽어보고 싶긴 한데 너무 두껍네 언제 다 읽지...
 
지타 유토: 전문적인 내용의 책들이 많네요. 읽기는 어려울 수 있겠지만 도움은 되겠어요.
 
이코 하야오: 흥미로운 주제의 책들이 많아서 좋네~
 
 
2층에는 예술, 언어, 문학, 역사, 소설과 관련된 책들로 되어있었다.


이메 미치카: 음... 너무 어려운데~? 난 못 읽겠다~
 
가미네 우타로: 지식 창고라 맘에 드네.


책들과 사다리, 피아노 말고는 딱히 이상하거나 기억할 점은 존재하지 않았다.


지타 유토: 좋아요. 이 정도면 조사는 전부 마친 거 같으니 이쯤에서 식당으로 돌아갑시다.

나즈마 마이리: 좋아 가자!

가미네 우타로: 4시가 다 되어갈테니 다른 단원들은 이미 기다리고 있을 것 같네.

이코 하야오: 책 몇 개는 가져가야겠어~ 영감을 얻을 게 많겠어~

이메 미치카: 나 먼저 가기 전에 빨리 와~


하야오가 본인이 읽을 책 몇 권을 챙기고 우리 5명 모두는 식당 쪽으로 향하였다.


지타 유토: 근데 그 메달이라는 거 하나도 못 찾았네요.

가미네 우타로: 혹시 아코 단원이 먼저 다 찾은 것 아닐까 싶네.

나즈마 마이리: 짜잔, 난 책들 속에서 하나 찾았지롱.


그렇게 말하며 마이리는 주머니 속에서 모노메달을 꺼냈다.


지타 유토: 이렇게 넓은 본관을 조사했는데 발견한 메달은 하나네요.
 
나즈마 마이리: 하나 밖에 못 찾은게 아니라 하나나 찾은거지! 난 그렇게 생각할거야!
 
이코 하야오: 그런 긍정적인 모습 보기 좋아~


그렇게 담소를 나누며 서로의 우정을 키워갔다.
이런 우정이 계속 되면 좋겠다는 생각이 내 마음 한 속 깊숙히 자리 잡고 있다.
이미 끊어진 우정보다 지금 흐르고 있는 우정을 생각해 본다.
이 우정이 잔잔하게 흘러가기를 바란다.
다른 누구가 아닌 내 스스로 정한 우정이니 말이다.
 
 

-3화 完-

ps. 다음화는 텐카 일행 시점에서의 조사 파트가 업로드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