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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토리/챕터 1

[챕터 1] 희망이라는 이름의 움직이는 관 - 일상편 : 2

단간론파 Dan은 단간론파 본가 시리즈의 스토리 및 인물에 대한 스포일러, 주관적 해석과 재창작 요소를 다수 포함하고 있으니 부디 이점 유념해 주시길 바랍니다.

단간론파 Dan은 다양한 등장인물들이 대화를 나누는 내용 특성상 주인공 및 캐릭터들의 속마음 및 생각 등의 부분에서 대본체 표기가 들어간 부분이 많습니다.
읽는데 불편함이 없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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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간론파 Dan
<챕터 1>
희망이라는 이름의 움직이는 관

 
개인실을 빠져나온 후 한 걸음씩 조심스럽게 식당으로 향했다.
왠지 모를 긴장감이 나를 휘감고 있었다.
약속 시간이 12시 30분으로 정해져 있었지만 나는 12시 20분에 개인실에서 나섰다.
약속 장소인 식당이 개인실에서 먼 것은 전혀 아니었지만, 괜히 여유를 부리다가 지각을 해서 안 좋은 인상을 남기게 되는 것은 싫었다.
얼굴도 제대로 익혀지지 않은 초고교급들과 회의를 하는 것이 낯설어 두렵기도 했지만, 그게 내 감정의 전부를 설명할 순 없었다.
이게 무어라고, 왜 떨리고 긴장되는 것인지 줄곧 생각했다.
그러다 내가 그만큼 간절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미제사건을 해결하고 사람들에게 천재적인 탐정, 즉 초고교급 탐정이라는 호칭으로 불려본 일들, 몇몇 사람들에게 재능이 있단 말을 들어본 경험을 빌미 삼아 내 꿈의 수명을 연장하기에는 부족했다.
보다 확실하게 내가 될 성싶은 사람이라는 것을 증명해야 했다.
이를 더 이상 오래 두고 볼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이 즈음해서 이 회의가 내게 작은 기회가 될 수 있기를 바랬다.

이 우울한 분위기의 전환점이 되어줄 거라는 기대로 왔는데, 그 기대마저 처참히 무너질까 봐 긴장이 턱 끝까지 차올랐다.
이 회의가 긍정으로 끝나든 부정으로 끝나든 이 회의가 나에게 시사하는 바는 클 것이다.
그런 생각을 하며 식당의 손잡이를 붙잡았다.
 
 
야카 세토: 하..하지타 씨? 거기서 뭐하세요..?
 
 
식당 문을 열고 들어가기 직전 아야카가 나에게 말을 걸어온다.
나는 조심스럽게 뒤를 돌아 아야카를 바라본다.
 
 
지타 유토: 아야카 씨 군요. 전... 이제 막 식당으로 들어가려고 했습니다.
 
야카 세토: 그렇다고 하기에는 망설이고 계셨던 것 같은데요..?
 
지타 유토: 티가 많이 났나요?
 
야카 세토: ··· 네... 뭔가 고민이 있으신 건가요?
 
지타 유토: 아뇨... 뭔가 긴장이 되어서 그렇습니다.
 
야카 세토: 그럼 같이 들어가실..래요..? 싫으시면 거절하셔도...
 
 
아야카는 후드티의 모자를 더욱 더 밑으로 내려 붉게 달아오른 자신의 얼굴을 가렸다.
물론 모자의 한계가 있어 얼굴 전체를 가리지는 못했다.
 
 
지타 유토: 아뇨 상관 없습니다. 같이 들어가죠.
 
야카 세토: 네..넵..!
 
 
아야카는 후드티의 모자를 원래의 모습으로 만드고선 나의 근처로 다가왔다.
턱 끝까지 차 올랐던 긴장감이 조금은 사그라 들은 것 같다.
그 기세에 이어 나는 식당의 문을 열었다.
문을 열자 많은 분들이 이미 식당에서 대기하고 계셨다.


이코 하야오: 어서 와 하지타~ 아야카도 같이 왔네~

카하시 아리이치: 여, 하지타 탐정 어서 오고.

다요시 미네로: 환대하오, 하지타 귀공. 아야카 귀공.


몇몇 이들이 환영의 말씀을 건넸다.

 
즈오 미즈키: 둘이 같이 온거야?
 
지타 유토: 네, 들어가려 했을 때 아야카 씨와 딱 마주쳤습니다.
 
: 그렇게 서 있지 말고 자리라도 맡지 그래?
 
지타 유토: 자리요?
 
나즈마 마이리: 식당에 온 순서대로 앉을 고정석을 정하기로 했거든. 빈자리 중에 아무대나 앉으면 돼.
 


얼떨떨하긴 하지만 빈자리 중에 그나마 마음에 드는 자리에 앉았다.
식당의 의자는 외식하면 자주 보일 법한 유럽풍 의자였다.


야카 세토: ···


아야카는 아무말 없이 비어있는 나의 옆자리에 앉았다.
다른 자리도 있는데 굳이 내 옆자리에 앉는 이유가 있는걸까?
물어봐도 되겠지만 나름의 이유가 있겠지 싶어 넘어가기로 했다.

 
지타 유토: 몇몇 분들은 아직 안 오신 건가요?


의자에 앉고 자세를 고치며 말했다.


카 미오리: 그렇다. 네가 11번째다.

즈마키 하로: 안 오신 분은 기나오 님, 아코 님, 자이메 님 그리고 쇼타 님이에요.
 
지타 유토: 아직 안 오신 분들이 좀 있네요.
 

 12시가 된지 얼마 되지 않았기에 여유를 가지고 기다리면 올 것이라고 생각했다.
 시간은 아직 많으니 말이다.
 

즈오 미즈키: 아코는 뭐 하길래 안 오는거야? 우리 중에 거의 제일 먼저 온 애가 자나?

: 그렇게 따지면 사이클선수가 안 온 것도 이상한데.

지타 유토: 토마 씨의 상태는 확인해 보셨나요?

즈마키 하로: 네 확인해 봤는데 좀 끔찍하더라고요... 온 몸을 깁스에 붕대까지 칭칭 감으셔서 얼굴은 알아 볼 수도 없었고 숨만 붙어있는 상태 인 것 같아요. 깨어나시려면 오래 걸릴 것 같고...
 
이코 하야오: 말만 들었는데도 안타깝네~
 
 
확실히 매우 큰 부상이었다.
그 폭발을 가까이에서 맞았으니 보통 사람이면 진작에 그 자리에서 신체 부위 중 어딘가가 날아가거나 죽었을 수도 있다.
토마이기에 그 정도로 끝난 것이다.
적어도 일주일은 간호해야 할 필요가 있을 것 같다.

그럼 몇몇 이들은 이렇게 말 할 수도 있다.
본인이 잘못한 것을 왜 다른 이들까지 책임을 져야 하는가 라고 말이다.
그것은 그 사람이 저지른 일의 업보라고.
그럼 한 번 이 "업보"에 대한 나만의 정의를 내려볼까 한다.
업보에 대한 사전적 정의는 이미 분명하다.
선악의 행업으로 말미암은 '과보'.
과보. 전생에 지은 선악에 따라 현재의 형과 불행이 있고, 현세에서의 선악의 결과에 따라 내세에서 통과 불행이 있는 일.

실제 정의는 꽤나 방대하다.
전생에서의 선악이 현생에 영향을 끼치고, 현생의 선악이 내세에 영향을 끼친다니 말이다.
그러나 나에게 있어 업보는 이 생에서의 과거와 현재, 미래에 대한 이야기이다.
나에게 인생은 업보다.
과거 자신의 선택과 행동으로 비롯된 것들이 자신의 삶을 꾸리고 있고, 현재의 자신의 선택과 행동이 자신의 미래에 영향을 까칠 것이기 때문이다.

결론적으로 업보는 어감상 부정적인 느낌도 든다.
과거의 선택으로 인해 받는 현 시점의 체벌처럼 느껴지는 어감이지만, 다르게 생각하면 내 삶은 내 선택과 행동으로 꾸려지는 것임을 알 수 있다.
그리고 그렇게 나온 결과물을 어떻게 바라보느냐에 따라 미래의 방향성이 달라질 수도 있다.
그러니 현 시점에 어떤 기회를 발견하고 나아갈 것인지에 집중할 필요가 있다.
 
 
다요시 미네로: 붕대랑 깁스는 누가 해줬을지가...
 
카하시 아리이치: 모노젠틀이 감았겠지... 아니지 그 쪼꼬미 로봇들이 감았나?
 
나즈마 마이리: 붕대를 감을 손 같은 건 안 보였었어. 아마 아닐 것 같아.
 
카하시 아리이치: 그럼 모노젠틀이 감아줄 시간은 있냐? 체육관에서 모노젠틀이 나가고 바로 감았다고 하더라도 시간이 좀 많이 빠듯 할 것 같은데?
 
나즈마 마이리: 어 그러네. 진짜 그 로봇들이 감아줬나?
 
모노: 학생들이 궁금증이 생긴다면 알려줘야 하는 것이 인지상정!
 
 
모노젠틀이 식탁 위에 폼을 잡은 상태로 나타나며 말했다.
 
 
즈오 미즈키: 아이씨 왜 식탁 위에 올라와! 안 내려가?
 
카하시 아리이치: 너 또 뺨 맞고 싶어서 나왔냐? 원펀치 쓰리 강냉이 보여줘?
 
모노: 때릴거면 때리시죠. 아리이치 학생 손만 아플텐데, 토마 학생의 붕대를 감은 것은 제가 맞습니다.
 
카하시 아리이치: 뭐야 진짜 너였어? 왜 그렇게 지극정성으로...

모노: 그럼 대답했으니 전 이만 가보겠습니다.
 

그렇게 말하며 모노젠틀은 아리이치의 물음에 답하지 않고 사라졌다.
정확히는 회피이다.
물음에 대답하지 않고 회피를 선택한 것이다.
 

카하시 아리이치: 아이씨 사람이 물어보는데 토껴? 
 
가미네 우타로: 저런 폭군 상대하는데 힘 쓰지 말게나. 아리이치 단원만 손해네.
 
즈오 미즈키: 쟤 상대 할 필요 없어. 그냥 참아.
 
카하시 아리이치: 하... 내가 참고 말지. 열받는 새끼.
 

바쁜 것인지 아니면 다른 이유가 있는 것인지는 알 수 없지만, 모노젠틀은 아리이치의 물음이 불편했던 것일지도 모른다.
그렇기에 자신만 불편한 상황을 회피하고 스스로를 완벽하게 포장하려고 하는 것이다.
본인이 쓰고 있는 이상한 가면 뒤에 자신을 포장하고 있는 것이다.
모노젠틀이 나간 뒤 상황은 어느정도 일단락 되었다.
물론 일시적인 것이었기에 곧 다시 이야기의 화제가 바뀔 것이다.
 

나즈마 마이리: 근데 궁금한 게 있는데 기나오 군은 토마 군 상태 확인하러 간 거 아니었어? 근데 기나오 군은 어디 있는 거야?

즈마키 하로: 기나오 님은 아까 토마 님의 상태를 확인하신 후에 본인 개인실에 들렀다가 간다고 먼저 식당에 가 계시라고 하셨어요.

이코 하야오: 다들 그럼 조금만 기다려보자~ 곧 오겠지~


그렇게 우리는 얘기들을 나누면서 남은 사람들을 기다리기로 했다.
딱히 중요한 이야기들은 아니었다.
기억 나는 것만 말해보자면... 이곳에 오기 전에 다들 뭐하고 지냈는지, 이곳의 어디인지와 같은 이미 한 번쯤 생각해본 주제들이었다.
 
 
카하시 아리이치: 흠... 이제 슬슬...
 
 
아리이치가 본인 뒤에 있는 벽시계를 계속해서 확인하며 말했다.
 
 
즈오 미즈키: 아직 25분이거든? 좀 기다려.
 
카하시 아리이치: 아 기다리기 귀찮다고~ 이럴 줄 알았으면 나도 25분 쯤에 나왔지.
 
즈오 미즈키: 식당 같이 가자고 내 개인실 두드린 애가 할 말은 아닌 것 같은데?
 
카하시 아리이치: 그거랑 이게 같냐? 난 그냥 지금 기다리는 이 상황이 귀찮다고.
 
 
아리이치는 지금 이 기다림을 귀찮아 하고 있다.
기다림...
언제부턴가 우리는 무엇이든 빠른 속도를 요구하는 시대에 살고 있다.
그리고 이제는 빠르지 않은 서비스는 도태되기까지 하는 현상을 느낄 수 있다.

모든 것이 전과는 비교하지 못할 정도로 빠름을 욕망하는 시대다.
영상을 빠른 속도로 보기도 하고, 1분짜리 영상도 길어 채 끝까지 보지 못하고 다음 영상으로 넘기기도 한다.
저런 형태의 영상이 대부분의 SNS 영상의 주를 이룬다.
그리고 그러한 영상이 인기가 있다.

끝없이 기다리는 것은 고통스러울지 몰라도 기다리는 대상이 내게 필요하다기에 해야만 하는 일종의 체념 같았다.
그래서 어떤 때는 기다리는 것을 무의미하고 비효율인 부정의 대명사로 느낄 때도 있다.
하지만 기다림의 가치는 그 기다림이 끝났을 때 비로소 완성된다.
기다림의 가치는 무엇을 어떻게 기다리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기다림 끝에 만날 그것의 가치는 기다리는 시간의 가치에 비례할 때가 많다.
그래서 나는 기다리는 순간을 고통의 시간이 아니라고 여기기로 했다.
물론 몇 시간을 기다리는 것도 아닌 몇 분 기다리는 것으로 너무 오바한다고 생각할 수 있다.


 
나오 소오타
: 죄송합니다. 여러분들. 제가 좀 늦었죠?
 
 
여러가지 생각하던 사이 기나오가 한 손에는 전자 학생 수첩을 든 채로 식당에 들어왔다.
 

즈마키 하로: 어서오세요 기나오 님. 뒤에 다른 분들도 데리고 오셨군요.

나오 소오타: 네? 다른 분이요?


기나오는 알 수 없다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물론 눈이 실눈이라 표정을 정확히 파악 할 수는 없었지만 몸짓과 말투 만으로 충분히 파악이 가능했다.


이메 미치카: 미안미안 잠시 기다리게 했네~


 자이메가 기나오의 뒤를 이어 곧바로 식당에 들어온다.


나오 소오타: 누군가가 오는 소리는 못 들었는데 언제...

이메 미치카: 막 너 따라서 왔지~ 설마 끝까지 모르나 했는데 진짜 모르는 것 같더라?

나오 소오타: 전혀 몰랐습니다. 의외로 조용한 면모도 있으시군요.


기나오가 알아 채지 못한 것은 단순한 우연일까?
아니면 자이메의 발소리에 인기척이 거의 없었던 탓일까?
따져보자면 후자가 가능성이 높다고 예측 할 수 있다.


: 이야기는 나중에 하고 좀 앉지 그래?

이메 미치카: 그럼... 난 여기 앉아야지~

나오 소오타: 잠시 실례 하겠습니다.


기나오와 자이메까지 본인들이 원하는 좌석에 착석했다.
이걸로 이제 13명이다.


가미네 우타로: 이걸로 아코 단원과 쇼타 단원, 부상당한 토마 단원을 제외한 전원 집합 완료네.

나오 소오타: 아코 씨랑 쇼타 씨 가요? 그럼 제가 두 분을...

카 미오리: 아니 그럴 필요 없다.

나오 소오타: 네?

카 미오리: 그 녀석들은 우리랑 협력 할 의지가 별로 없어 보인다. 이러한 상황이라면 도망치지 않고 오히려 다른 이들과 이 상황을 타개하려고 최소한 모이기라도 하기 마련이다. 그런데 그 최소한의 일도 하지 않고 우리에게는 관심조차 없으며 오히려 싫어하는 사람들을 챙겨주고 같이 협력해야만 하는 이유가 무엇인가? 내 말이 틀린가?
 
 
협력.
다른 말로 협동이라고도 한다.
협동을 한다는 건 사람들끼리 서로 다른 모양을 뽐내는 것이 아니라 다른 모양을 서로 맞춰 하나의 것으로 맞춰간다는 뜻이다.
나는 네모난 사람이고 어떤 사람은 동그란 사람일 것이다.
어떤 사람은 세모난 사람이고 어떤 사람은 별 모양의 사람일 것이다.
각자만의 장점이 있을 텐데 우리는 어느 모퉁이 하나 맞지 않는다.
하지만 이 모퉁이 하나 맞지 않는 사람들이 모여 협력하고 상호의존할 때 바래지는 무언가가 있다.
그걸 협력이라고 한다.
누군가 하나가 튀지 않고 하나의 다른 완성된 무언가를 만들어 내는 것, 협동이 아니면 할 수 없는 일이다.
 
협력하는 건 생각보다 꽤나 힘든 일이다.
에너지도 많이 들고 어두운 과정들이 기다리고 있기도 하다.
사람들이 다 내 맘 같지 않기 때문이다.
온 세상 사람들이 나와 생각이 같고 내 맘 같고, 내 생각과 같으면 얼마나 좋을까?
협동하면서 한 번쯤은 느껴볼 것이다.
그럴 때 저 사람은 왜 저렇지? 가 아니라 저 사람은 저런 사람이구나라는 시선으로 바라봐야 한다.
환경에 따라 달라지는 그 사람의 성향을 "이해"할 수 있어야 한다.
거기서부터 협력과 협동이 시작 되는 것이다.
하지만 그 두 사람은 이해하려는 행동을 보이지 않았다.


야카 세토: 아.. 아무리 그래도 데려오지도 않는 건 너무하다고 생각해요...
 
이코 하야오: 그 둘이 죽을 죄를 지은 것도 아니잖아~? 지금 상황이 안 좋으니깐 예민해져서 그런 걸 수도 있고~
 
카 미오리: 그 둘이 우리가 필요해질 때 찾아온다면 그때 받아줘도 늦지 않다. 내가 말하는 것은 그들에게 관심을 주지 않고 방치하자는 의미가 아닌 직접 우리를 찾아오게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카하시 아리이치: 야 아까는 살인 막겠다고 하던 애가 지금 그 둘을 혼자 둬? 그거 모순 아니야? 만약 그 둘이 살인을 계획하고 있으면 어쩌려고? 막말로 지금 아코나 쇼타가 토마 죽이면 어쩌려고 그래? 지금은 토마 지키는 사람도 없잖아.

즈오 미즈키: 뭐야 너 왜 갑자기 능지 올라가?
 
카하시 아리이치: 내 능지는 원래 이 정도야. 좀 다시 보이냐?
 
즈오 미즈키: 아 뭐래 아니거든.
 
 
미즈오가 어이 없다는 듯이 실소를 보이며 말했다.


카 미오리: 어디서부터 설명 해줘야 할 지...
 
 
텐카가 설명하기 귀찮다는 듯이 말했다.


지타 유토: 그 말엔 약간의 논리적 비약이 있습니다. 아코 님이나 쇼타 님이 토마 님을 죽일 가능성은 현저히 낮습니다. 만약 지금 이 상황에서 누군가가 토마 님을 죽인다면 용의자는 아코 님이나 쇼타 님, 둘로 좁혀지게 될 텐데, 그렇게 된다면 범인으로 발각되기도 쉽기에 굳이 그런 일을 벌일 필요가 없습니다. 그러니 딱히 걱정 할 필요는 없을 것 같습니다.
 
 
어쩔 수 없이 텐카의 말을 가로채 내가 대신 얘기한다.
만약 지금 내가 한 이 말이 틀릴 경우 그만큼 민망한 일도 없을 터인데, 어째서인지 전혀 망설이지 않았다.
마치 확신에 찬 듯이 말이다.


카 미오리: 내 대사 가져가 대신 말해준 거 정말 고맙다.
 
 
비꼬는 것인지 아니면 진심으로 말하는 것인지 알 수 없었다.
말에 감정이 잘 드러나지 않았기에 그 의도를 파악하기 어려웠다.

 
즈마키 하로: 그것도 맞는 말이네요.

이코 하야오: 토마를 걱정하는 마음은 이해하지만 그런 것까지 완벽하게 할 수는 없을 것 같아~

카하시 아리이치: 그렇다면야 알았어...


아리이치는 어쩔 수 없이 나와 텐카의 말을 수용했다.
그 이해했다는 말투에서 뭔가 불편함이 느껴지는 것 같았다.
자신의 주장이 다른 이들에게 반박 당하는 것이 불편한 것이다.


나즈마 마이리: 그럼 나중에 따로 아코 군이나 쇼타 군에게 회의 내용을 알려주던가 하자.

즈오 미즈키: 그래 그렇게 하면 되지 뭐.

나오 소오타: 알겠습니다... 그럼 회의를 진행...


기나오는 약간 못마땅한 눈치였으나 다시 회의를 재개하려고 했다.


카하시 아리이치: 잠깐!


아리이치가 갑작스럽게 소리 치며 기나오의 말을 끊었다.
처음 들은 아리이치의 큰소리에 모두의 이목이 집중됐다.


야카 세토: 깜..깜짝이야...


아야카가 자신의 후드티 모자를 힘껏 잡으며 작게 말했다.
다른 이들은 알아채지 못한 것 같은 눈치였지만 옆자리에 있던 나는 알 수 있었다.


나오 소오타: 네 아리이치 씨, 갑자기 왜...

카하시 아리이치: 그 우리 밥은 안 먹냐?

나오 소오타: ··· 네?

카하시 아리이치: 지금 12시가 넘었는데 한 끼도 못 먹는 게 맞냐? 진짜??

즈오 미즈키: 와 진짜 이유 개하찮네. 회의하고 먹어도 되잖아. 회의를 한 두 시간 씩 하는 것도 아니고.

카하시 아리이치: 야, 금강산도 식후경 몰라? 먹을거면 지금 먹는게 좋다 이런 말이야.


모두가 아리이치를 특이한 생명체를 보는 듯한 눈으로 바라본다.
겨우 큰소리치며 말 한 것이 고작 식사 관련 얘기라니 약간 어이가 없기도 했다.
물론 중요한 사항인 것은 맞지만 지금 상황에 이야기 할 말한 주제는 아니었던 것이다.
허나 틀린 말은 아니었기에 함부로 반론을 하는 이는 딱히 없었다.


즈마키 하: 중식은 먹고 회의를 하는 게 더 좋을 수 있지 않을까요?

이메 미치카: 그럼 그럼~ 밥을 먹고 회의하는 게 훨씬 효율적일 것 같기도 해. 난 찬성이요~

나즈마 마이리: 나쁠 건 없지. 나도 찬성.


잠시 생각을 끝낸 몇몇은 자신들의 의견을 표현했다.
그 의견에 반대하는 이들 또한 없었다.
우리 모두 자신만의 의견을 표현 할 자유가 있기에 그 누구도 뭐라 하지 않은 것이다.


지타 유토: 그럼... 밥만 먹고 진행할까요?


내가 다시 되묻자 몇몇 이들은 구두로 하는 대답 대신 고개를 끄덕이는 등과 같은 신체적인 대답을 하였다.


다요시 미네로: 음식준비는 소인이 하도록 하겠소.


타다요시가 주변의 반응을 살피더니 자리에서 일어나 명쾌한 *게다 소리를 내며 조리실의 문 쪽으로 향했다.
(게다: 일본 전통 나무 나막신)


이코 하야오: 나도 도울게~ 요리는 잘하거든~

나오 소오타: 그럼 저까지 돕겠습니다.
 
다요시 미네로: 시장하신 분들이 많으니 신속하게 준비 할 수 있도록 하겠소.


그렇게 세 명은 식당의 조리실로 들어가며 사라졌다.


가미네 우타로: 나머지는 수저와 그릇들을 갖다 놓도록 하게나. 나도 돕겠네.

 
가만히 앉아서 놀고 있을 수만은 없었기에 수저를 놓거나 식탁을 닦는 등 우리 나머지 10명이 할 수 있는 일을 하기로 했다.
몇몇은 분주하게 움직이는 반면 대부분은 무엇을 해야 할 지 몰라 멀찍이 지켜보고 있거나 자신의 자리에 앉아서 시간만 때우고 있었다.
나 또한 대부분, 과반수에 속하는 인물이었다.
 
할 일을 끝내고 시계를 보니 약 1시를 가르키고 있었다.
벌써 20분 가까이가 지난 것이다.
조리실에서 분주하게 요리하는 소리가 식당 전체에 울려 퍼졌다.
맛있는 냄새가 후각을 자극해 식욕을 돋게 하는데도 아직 밥이 나오지 않는 것에 보채는 이는 없었다.
보채봤자 해결되는 것은 아무것도 없기 때문이라는 것을 모두가 알고 있는 듯 했다.
 
다른 이들이 분주하게 움직이는 것을 보고 있을 때, 아이코가 등으로 문을 밀어 여는 모습이 보였다.
그의 양손에는 음식이 잔뜩 담긴 그릇들이 들려 있었다.
 
 
이코 하야오: 얘들아 부딪히지 않게 잠시만 비켜줄래~?
 
 
아이코는 아슬아슬하게 바닥에 음식을 쏟지 않고 식탁에 올리는 데에 성공했다.
샐러드랑 빵, 고기 같은 음식들이 각 그릇에 예쁘게 플레이팅 되어 있었다.
 
 
나즈마 마이리: 우와! 플레이팅 뭐야? 완전 이뻐!
 
즈마키 하: 그러게요, 한두 번 해본 솜씨가 아니신 것 같아요!
 
이코 하야오: 칭찬 고마워~ 이것 때문에 시간이 좀 걸려버렸네~
 
: 눈이 즐거워야 맛도 좋지. 좋은 시도였다고 봐.
 
 
모두가 아이코의 플레이팅 솜씨에 감탄하고 있었다.
어딘가에서 배운 것인지 아니면 그냥 감각으로 한 것인지는 모르겠다만, 확실히 놀라운 솜씨임은 틀림 없다.
 
 
나오 소오타: 여러분. 다른 음식들도 있으니 마음껏 드세요.
 
다요시 미네로: 좌불안석 하지 말고 빨리 착석 하시오.
 
 
그렇게 칭찬일색 하는 동안 기나오와 타다요시가 트롤리에 음식들을 싣고 식탁 앞에 위치시키고 트롤리에 있는 음식들을 식탁 위까지 깔끔하게 옮겼다.
그 긴 식탁이 음식들로 찰 정도로 말이다.
 
 
카하시 아리이치: 와 씨 좆된다...
 
 
아리이치가 나지막하게 감탄의 말을 내뱉으며 본인의 입을 팔로 닦는다.
어찌보면 최고의 극찬인 셈이다.
 
 
나즈마 마이리: 너무 많은데 이렇게까지 먹어도 되는거야? 나중에 모자르는거 아니야?
 
이코 하야오: 딱히 걱정 할 필요는 없을 것 같아~ 음식들은 잔뜩 있거든~

나오 소오타: 냉장고에 냉동식품도 잔뜩 있고 신선한 식재료들도 많습니다. 식료품창고에도 많고요. 신경을 많이 쓴 느낌이 많이 났습니다.
 
이메 미치카: 음식 가지고 장난 안 치는게 어디야~ 그것만으로도 럭키지.
 
: 참 긍정적이네. 다른 의미로 대단해.

다요시 미네로: 그리고 벽면에 배급구 같은 것도 있었소. 열어보니 바닥에는 트레이가 깔려 있었고, 패널 같은 것을 이용하여 어딘가로 식량을 보낼 수 있는 것 같소.
 
 
배급구? 패널? 트레이?
배급구 인지는 확실하지는 않지만 비슷한 무언가를 본 기억이 정확하게 있다.
 

지타 유토: 배급구라면 아마 각자의 개인실에 음식을 보낼 수 있도록 만들어진 용도일 겁니다.

카하시 아리이치: 그걸 어떻게 아는데?

즈오 미즈키: 너 조사 안 했냐? 침대 근처에 환풍구 같은 거 있었잖아! 그거겠지!

카하시 아리이치: 어... 맞.. 맞아! 있었지, 아 맞다!


아리이치는 되도 않는 연기를 하기 시작했다.
이런 수준의 연기에 속는 이는 없을 터, 그걸 진심으로 듣는 이 또한 없을 것이다.
모르는 것이 있다면 솔직히 말하는 것이 옳다고 생각한다.
그래야 모르는 것을 바로 잡을 수 있으니 말이다.
 

카 미오리: 모르는데 아는 척 하는 발연기 매우 잘 봤다.

카하시 아리이치: 아이씨 역시 연기는 내 스타일이 아니야. 그래서 그 배급구를 어디에 쓰는데? 개인실에서 밥 먹는 애들을 위해서 있는거야?
 
지타 유토: 그것도 있겠지만... 아픈 환자가 있다면 개인실로 음식을 보내는 등, 여러 방면으로 유용하게 사용 할 수도 있을 겁니다.
 
가미네 우타로: 나중에 자세히 조사 해보는 것이 좋겠네.

카하시 아리이치: 오케이 알겠으니깐 이제 진짜 먹자. 등이랑 배랑 달라 붙겠어.
 
나즈마 마이리: 그럼 이제 진짜 먹자! 오래 기다렸으니깐.
 
즈마키 하: 모두 맛있는 식사 되세요.

야카 세토: 잘.. 잘 먹겠습니다...
 
 
그렇게 우리의 첫 식사의 장의 막이 열렸다.
생각했던 것과는 다른 전개로 흘러가긴 했지만, 이쪽의 분위기가 감정이 상하거나 험악해지지도 않고 훨씬 좋다.
누군가는 천천히, 누군가는 급하게, 누군가는 수다를 떨며, 누군가는 경계하며 모두가 각자의 방식대로 음식을 먹기 시작했다.
살인 학급 생활이라면 누군가가 음식에 어떤 짓을 했을 것이라는 합리적 의심을 할 만했음에도 그 누구도 이 사실에 대해 지적하지 않고 음식을 먹었다.
지적하는 것을 망각하거나 분위기상 언급하지 않은 것일 수도 있지만 본인의 생각으로는 후자의 생각이 맞는 것 같다.


야카 세토: 윽... 가지는 약간 그런데...
 
 
아야카는 본인의 접시 구석 부분에 가지를 밀어 놓는다.


카 미오리: 남기지 말고 먹어라.

지타 유토: 라고 하기에는... 텐카 씨 접시에도 콩이...

카 미오리: 안 먹는다는 게 아니다. 나중에 먹으려는 것이다.

즈오 미즈키: 맛있는 걸 나중에 먹는 그런 스타일?

카 미오리: 오히려 그 반대다.
 
 
그렇게 우리는 식사를 하며 별로 영양가가 없는 대화를 이어갔다.
알 필요도 없고 각자 먹는 것에만 집중해도 되는데 말이다.
하지만 이런 것이 무의미하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이런 하찮은 무의미가 언제 어디에서 어떤 방식으로건 닿을 누군가가 그 무의미를 의미 있게 만들어줄 것이란 확신을 얻었기 때문이다.
이런 무의미가 규칙에 얽매인 진지하고 바쁜 현실 속에서 오히려 더 큰 행복이나 여유를 줄 수도 있는 것이다.
그렇기에 식사를 하며 대화를 할 수 있는 상황이 된다면 그 대화를 이어나가려고 한다.
그게 어떤 의미도 없을 뿐이어도 말이다.
 
그렇게 대화를 이어나가며 식사를 하다 보니 어느샌가 대부분의 그릇이 비어있었고 대부분은 식사를 다 끝마친 상태였다.
 

가미네 우타로: 식사 마쳤으면 이제 치우도록 하겠네.

이메 미치카: 그래, 그럼 갖다 놓는 건 내가 할게~

다요시 미네로: 그릇이 깨지는 교각살우한 사건이 일어나면 안 되니 소인도 함께 치우겠소.


그렇게 카가미네, 자이메, 타다요시가 그릇들을 갖다 놓고 아까와 같이 나머지가 뒷정리를 했다.
설거지를 하거나 바닥에 흘린 음식을 닦거나 식탁을 닦는 등 본인이 할 수 있는 부분에서 말이다.
그러다 보니 시간이 오후 1시 45분 쯤을 가리켰다.
13명이서 식사를 하고 뒷정리를 하는데 까지 약 50분 가까이 소요 된 것이다.
인원이 많은 만큼 치울 양도 많겠지만 치우는 인원도 그만큼 많았는데 말이다.

 
나오 소오타: 크흠, 그럼 밥도 먹었으니 이제 진짜 회의를 시작하도록 하겠습니다.
 
카하시 아리이치: 근데... 어떤 안건부터 얘기해야 되려나. 
 
: 첫단추 끼우는 게 가장 어렵지. 일단은 개인이 해야 할 안건 말고 우리 모두 단체가 할 수 있는 안건부터 정하는게 어때?
 
이코 하야오: 그래~ 그게 좋을 것 같네~

지타 유토: 그럼 앞으로 회의나 식사 같은 것을 하기 위해 아침, 점심, 저녁 적어도 3번은 이곳에 모여야 되니 집합 시간을 먼저 정하도록 할까요?

즈마키 하로: 간단하게 아침기상방송이 울렸을 때인 오전 7시쯤에 식당에 모여서 아침식사를 하고 오후 12시에 점심식사, 오후 6시에 저녁식사를 하는 것이 어떨까요?
 
카하시 아리이치: 오전 7시?? 야 너무 이른 거 아니야?
 
즈마키 하로: 너무 이른가요? 이 정도면 충분하다고 생각했는데...
 
카하시 아리이치: 그건 너한테만 충분한거지, 호텔은 조식을 일찍 먹으니깐! 

카 미오리: 그만큼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면 그만이다.
 
이메 미치카: 일찍 일어난 새가 벌레를 잡아 먹는다는 말도 있잖아~
 
카하시 아리이치: 일찍 일어난 새는 피곤해서 벌레 사냥 못 한다네요. 난 안돼!
 
지타 유토: 오후 10시에 심야 방송이 울리고 오전 7시에 아침 기상 알람이 울리기까지 약 9시간인데도 부족하신가요?
 
카하시 아리이치: 부족하지는 않는데 누가 요즘 오후 10시에 자. 개같은 거 적어도 12시는 넘어야 잘 거 아니야!
 
 
아리이치의 이 말에 어떠한 대답도 돌아오지 않았다.
마치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의미 같았다.
 
 
카하시 아리이치: ··· 너희 왜 아무 말도 없냐? 설마 아니지..?
 
나즈마 마이리: 난 12시에 넘어서 자긴 하는데 아침 일찍 일어나서 할 말이 없어.
 
다요시 미네로: 소인도 하루에 6시간 정도면 충분하오.
 
이코 하야오: 나도 보통 일찍 자~
 
야카 세토: 9시간 정도면 충분하다고 생각하는데요...
 
 
놀랍게도 여기 있는 대부분이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는 삶을 살고 있었다.
물론 나도 그런 편이긴 하다만 현대의 대부분은 늦게 자고 늦게 일어나는 저녁형 인간이 많은데 말이다.
 
 
즈오 미즈키: 보아하니 너 빼고는 다 괜찮은 것 같은데?
 
카하시 아리이치: 너..너도 12시 전에 자냐 설마?
 
즈오 미즈키: 당연하지. 늦게 잤다가 컨디션 조지면 그걸로 끝이야 끝! 그리고 밤 늦게까지 뭐할 건데 폰도 없잖아, 전자 학생 수첩 만지작 거릴거야?
 
카하시 아리이치: 그건 아니다만...
 
가미네 우타로: 서로 안 맞는 것이 있다면 서로 그것을 맞추고 이해하려고 노력해야 하네. 그게 공동체 생활이고 사회네. 싫다며 본인의 뜻만 고수하지 말고 바뀌려고 노력해야 다른 이에게도 존경 받을 수 있네.
 
카하시 아리이치: 오케이 무슨 말인지 알았어, 노력해볼게..요.
 
가미네 우타로: 이해해줘서 고맙네.
 
 
다행히 아리이치가 우리를 이해하기로 했다.
본인이 고집을 부려봤자 좋을 건 없다는 것을 본인이 자각하고 있는 것이다.
타인의 입장을 어느정도 고려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처음이라 쉽지는 않겠지만 노력한다면 반드시 바뀔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카하시 아리이치: 근데 그거 하나만 해 줘. 7시 대신 7시 반으로. 난 일어나자마자 씻는 스타일이라서.
 
: 나도 동의야. 머리가 길어서 씻는데 오래 걸리거든.
 
즈마키 하로: 그럼 7시 반 조식, 12시 중식, 6시에 석식... 이렇게 하면 될까요?
 
나즈마 마이리: 좋아! 문제 없어.
 
즈마키 하로: 알겠습니다. 기억해 놓을게요!

나오 소오타: 좋습니다. 모두들 외우실 수 있으시죠? 그럼 하나는 해결 됐고 다른 안건으로 넘어가 봅시다.

지타 유토: 일단... 지금 이 말도 안되는 상황에 대해서 얘기해 볼까요? 
 
 
지금 이 분위기와는 어울리지 않는 무거운 주제의 이야기이지만 반드시 다뤄야만 할 주제이다.
무거운 것은 잘라내면 된다.
잘라내기 두려운 이유는 수습할 방법을 모르겠어서, 그게 두려워서였을지도 모르겠다.
아니면 그냥 무거운 것에 익숙해진 나머지 그대로 흘러갔던 것인지도 모르겠다.
이유가 어느 것이든 맘을 먹었을 때 잘라내는 것이 맞다.
내가 먼저 가벼워지지 않으면 어찌할 도리가 없다.
그리고 내가 가벼워지는 순간 이게 이렇게 무거운 것이었구나, 내가 이런 걸 굳이 참고 있었구나 생각하게 된다.
 
 
가미네 우타로: 내가 정리 하겠네. 지금 우리는 키보가미네 입학식 당일에 알 수 없는 사유로 기절하여 이런 장소에서 깨어났네. 이곳이 어디인지는 알 방도가 없고 탈출도 불가능하고 연락 할 수단도 없으며, 설상가상으로 모노젠틀이라는 폭군이 나타나 이곳을 빠져나가기 위해서는 살인을 해야한다며 강요하네. 대충 이런 식으로 정리 할 수 있네.
 
카하시 아리이치: 대충이 아닌데?

즈오 미즈키: 영화도 이렇게 만들면 욕 먹어.

이메 미치카: 이게 꿈이어서 갑자기 확 깨어나면 좋겠다~

나오 소오타: 여러분들 모두가 아시겠지만 지금 저희가 해야 되는 것은 살인이 일어나지 않게 막는 것입니다. 일면식도 없는 사이에 어떠한 동기도 없이 사람을 죽이는 자는 없을 것입니다. 그러니 사전에 어떤 일이 일어날지 모르니 보험을 들어놓는 겁니다.

나즈마 마이리: 예를 들자면 어떤 거?

카 미오리: 몇몇 사람은 정해진 시간에만 활동을 한다던가 같은 거 말하는 건가?

나오 소오타: 바로 그겁니다. 임시방편으로 생각한 것이긴 하다만 24시간 중에 심야시간을 제외한 나머지 15시간을 4명이 약 4시간씩 각자의 시간에만 활동하는 겁니다.

카 미오리: 아까 가볍게 생각했던 아이디어인데 진짜였군. 임시 방편으로는 나쁘지 않은 의견인 것은 맞다.

나즈마 마이리: 그렇게 하는 건 좀 너무 강압적이지 않나? 불편할 것 같기도 하고...

카 미오리: 무슨 말인지는 이해한다. 살인을 예방 할 수는 있겠지만 그렇게 오래 가지는 못 할 것이다. 무엇보다 임시 방편이니 말이다.
 
다요시 미네로: 우리끼리 정한다고 되는 것도 아니오. 아코 귀공과 쇼타 귀공 그리고 토마 귀공은 이 사실을 알 수 없소. 우리와 그렇게 우호적인 관계가 아니더라도 이것에 대한 사실은 전달하는 것이 맞소.
 
카하시 아리이치: 아까는 이해했는데 이건 진짜 양보 못 하겠다. 지금도 답답한데 거기서 또 제한을 한다고? 우리가 동물원 동물들이야? 이건 나 뿐만 아니라 다른 애들도 불만이라고.
 
야카 세토: 오히려 상황만 악화되고 좋은 선택은 아닐 것 같아요...
 
 
모두가 각자의 주장을 하며 의견에 반대하고 있다.
이것은 아까와 반대의 경우이다.
반대가 과반수 이상인 경우, 하기 싫은 것을 해야 할 때 그것을 부정하기 위해 자주 나온다.
이유도 없이 반대하는 이도 있었지만 여러가지 논리적인 의견을 내며 세련되게 반대하는 이들도 있었다.
다짜고짜 반대는 듣는 이로 하여금 불쾌하게 만들 수밖에 없다.
 

세련된 반대를 잘하는 사람들은 떠오르는 생각에 ‘직관‘의 탈을 씌워 반대하지 않는다.
본인이 관찰한 것, 경험한 것, 공부한 것을 토대로 구체적인 이야기를 건넨다.
이야기를 듣는 상대가 스스로를 돌아볼 수 있게 말이다.
그리고 세련된 반대를 잘하는 사람에겐 더 나은 결과를 위해 충돌하고자 하는 에너지 즉 진심이 있다.
누군가에게 세련되게 잘 포장해서 반대를 전한다는 건 결국 일이든 사람이든 나아지게 하기 위함이다.



나오 소오타: 무슨 말인지 잘 알겠습니다. 부족한 제 의견 들어주셔서 감사합니다.
 
 
기나오는 자신의 의견을 부정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기나오의 그 말투에서는 오히려 굳은 의지가 묻어 나왔다.
'자기를 부정한다' 라는 말은 '내가 못났다.', '내가 똑똑하지 않다.', '나는 할 수 없다.'라는 말이 아니다.
단지 '내가 모르는 것이 있다' '내가 아직 학습이 필요하다.' 라는 의미일 뿐이다. 
자신을 못났고 부족하다라며 비난하는 사람이 말하는 '부족하다'와 '높은 기대로 인한 부족함'은 다르다.
비난을 통한 부족함을 벗어나는 방법은 자신보다 못난 사람들이 모여 있는 조직으로 가서 자신의 현재 모습이 뛰어나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 뿐이다.
하지만 이곳은 초고교급이라는 엘리트들이 모여있는 곳이다.
자신보다 못난 사람들이 모여 있기는 커녕 자신보다 대단한 사람들이 모여있는 곳이다.
하지만 '높은 기대로 인해 부족함'을 느끼는 사람들은 노력과 학습으로 그 차이를 좁히며 부족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내가 부족하지만 내 노력에 따라 더 성장할 수 있다.'라는 믿음을 가진 자기 부정이 성장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생각한다.


카 미오리: 알았으면 됐다. 아직 이르다는 것만 알면 충분하다.
 
이코 하야오: 너무 침울해 하지는 마~ 충분히 나쁘지 않은 의견이었으니깐~

나오 소오타: 알겠습니다. 여러분들의 의견도 알았으니 일단 이 이야기는 나중에 합시다. 아코 씨와 쇼타 씨와 함께 협력하고 토마 씨가 완치 된 이후 16명 전원이 모이면 그때 얘기합시다.

나즈마 마이리: 좋아 좋아 잘 생각했어, 그럼 다음 회의 주제로 넘어가자 자 다음~!
 
 
이나즈마가 힘차고 당차게 한 쪽 팔을 하늘로 들며 말했지만 아주 잠시 짧은 침묵이 이어졌다.
마치 시간이 멈춘 것처럼 조용히 말이다.
 
 
나즈마 마이리: 왜.. 아무 말도 없어? 내가 뭐 잘못했어?
 
 
이나즈마가 조심스럽게 자신의 팔을 내리며 말했다.
 
 
가미네 우타로: 그런 것은 아니네. 단지 갑자기 무엇을 해야 할 지 생각하느라 그랬네.
 
즈오 미즈키: 당연히 여기 조사해야 하는 거 아니야?
 
: 그건 나중의 일이고, 지금 13명이 모여있는 이 장소에서 할 수 있는 걸 말하는거야.
 
즈마키 하로: 글쎄요... 뭐가 있을까요?
 
 
모두가 잠시 고민에 빠졌다.
매일매일 고민의 연속이고 아직도 고민 중이다.
고민에 빠져 있다면 섣불리 결정하여 떨쳐내는 것이 좋다.
별 시덥지 않은 일로 스트레스 받을 필요는 없다.
 

이메 미치카: 근데 학생전자수첩에 적혀있는 규칙 중에 상벌점 규칙은 뭘까?
 
카하시 아리이치: 상벌점? 아 규칙에 적여 있던 그거?
 
 
상벌점 규칙이라면 분명 아까 체육관에서 전자 학생 수첩을 통해 본 기억이 있다.
내용이 분명...
• 17. 공동생활을 하는 동안 학생들이 하는 행실에 따라 상점 혹은 벌점이 부여됩니다.

• 18. 상점이 쌓을수록 공동생활에 이득이 있을 것이며 벌점이 많이 쌓일 경우 처형당할 수 있습니다.

라는 내용이었다.
상점과 벌점이라는 이름만 적혀 있을 뿐 정확히 상점과 벌점이 어떻게 정해지는 것인지는 표기 되어 있지 않았다.
 

카 미오리: 그런 건 모노젠틀을 불러서 확인해 보면 된다. 이봐 모노젠틀.


텐카가 자연스럽게 모노젠틀의 이름을 부르자 모노젠틀이 뿅 하고 나타났다.
아까와는 다르게 식탁 위가 아닌 식당의 입구 쪽으로 말이다.


모노: 네, 텐카 학생. 절 부르셨군요.

카 미오리: 분명 들었겠지만 다시 말하겠다. 상벌점 제도에 대해 설명하도록.

모노: 그걸 굳이 설명해야 합니까?
 
: 아까 모르는 거 있으면 다 물어보라며, 그 신념은 버린거냐?

모노: 여러분들 중학교는 나오지 않았습니까? 기본적으로 도덕적으로 인간적으로 지켜야 하는 규칙이나 행동사항들은 이미 알고 계시지 않습니까? 여기도 그것과 별 다를 거 없습니다. 상점도 마찬가지고 말입니다.

야카 세토: 그럼 처형이라는 것은 벌점이 몇 점이 되면 처형인 거죠..?

모노: 벌점이 10점을 초과하면 처형입니다.
 
 
10점이라면 결코 낮은 점수는 아니다.
물론 저지른 악행에 따라 벌점도 천차만별이겠지만 상점으로 만회 할 수 있을테니 그렇게 힘든 조건은 아니다.


지타 유토: 그럼 토마 씨는 몇 점이야?
 
 
토마는 모노젠틀을 진심으로 죽이려 들었다.
분명 그에 따른 벌점도 피할 수 없을 터였다.
죽음의 문턱을 넘었지만 그것은 토마가 초래한 일이었기에 별개로 보는 것이 맞다.


모노: 토마 학생은 지금 정확히 10점입니다.

이코 하야오: 예상하긴 했다만 역시나 비극이네~ 안타까워~

다요시 미네로: 자비를 베푼 것이오? 원래 같았으면 명문 학원의 학원장이라고 주장하는 인물에게 폭력을 휘둘렀으니 규칙에 따라 토마 귀공은 영면하는 것이 맞는데 말이오.

모노: 뭐 그렇다고 볼 수 있지요. 심지어 토마 학생은 기물파손까지 하지 않았습니까? 하지만... 애초에 학생수가 많은 것도 아니고 16명인데 바로 죽이기에는 그렇지 않습니까. 그래서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호의를 베푼 겁니다.

: 기물파손? 설마 개인실 근처에 나뒹굴고 있던 그 쇠막대기가?

모노: 맞습니다. 정말 괴물 같은 힘입니다...

 
그러면서 모노젠틀은 잠시 자신의 양복을 고쳐 입었다.
나와 이나즈마를 제외한 모두가 잠시 토마에게 알 수 없는 경외감과 압도적인 공포를 느낀 것 같다.
생각해보니 다른 분들에게는 이 사실을 알리지 않았었다.
 
분명 이나즈마, 아코 그리고 나를 제외하고서는 아무도 모르고 있었을 것이다.
아코는 그렇다 치더라도 이나즈마가 말하지 않은 것은 의외이다.
다른 이들에게까지 이 사실을 알릴 필요까지는 없지만 성격상 말 할 줄 알았는데 말이다.


지타 유토: 그럼 벌점은 어떻게 만회할 수 있어? 상점으로 만회할 수 있는 거야?

모노: 그렇습니다. 상점으로 벌점을 만회할 수 있습니다. 그것에 대한 건 제가 빠른 시일내에 좀 더 상세히 적어놓도록 하겠습니다.

이코 하야오: 좋아. 됐으니깐 이제 사라져 줄래~?
 
모노: 그럼 전 이만...
 
지타 유토: 잠깐 잠시만요. 아직 모노젠틀에게 물어볼 게 남았어요.

모노: 뭡니까, 하지타 학생?

지타 유토: 식당에 있는 음식은 무제한으로 리필되는 거야? 지금은 넘쳐난다고 하더라도 언젠간 바닥이 날 텐데.
 
 
지금 물어보지 않는다면 언제 물어볼지 모른다.
내가 따로 모노젠틀을 불러서 대화하고 싶지는 않으니 지금이 좋은 기회이다.
 
 
카하시 아리이치: 아 맞다. 그걸 잊고 있었네 가장 중요한 걸.

모노: 사실상 무제한이라 보시면 됩니다. 매일 아침마다 음식이 리필 되니깐요.
 
이메 미치카: 음식 무제한인 건 완전 좋은데? 
 
모노: 제가 신경을 많이 썼...

가미네 우타로: 그럼 진짜 사라지게, 불충한 것.

모노: ···
 

모노젠틀은 카가미네가 사라져 달라는 말을 하자 아무 말도 없이 퇴장했다.


나즈마 마이리: 그럼 이제 이걸로 회의는 끝난 거지?

지타 유토: 일단 기본적인 것에 관한 건 말이죠.


잠시 정적이 흘렀다.
아까와 같은 침묵이 흐르는 정적 말이다.


카하시 아리이치: 그럼 우리 모두 여기서.. 해산?

나오 소오타: 아뇨 아직 안됩니다.

카하시 아리이치: 엑, 아직도 남았어?

: 이제 학원을 조사해야지. 끝일거라 생각했어?

카하시 아리이치: 아 맞네 그걸 잊고 있었다.

즈오 마즈키: 학원 내부, 야외, 체육관... 조사 할 게 많아 보이는데?

가미네 우타로: 그럼 모두 인원을 나눠서 조사해보록 하는 거 어떤가?

지타 유토: 좋습니다. 그럼 각자 인원을 나눠서 조사한 이후 알아낸 정보들을 공유하도록 합시다.

이메 미치카: 좋아 그럼 빨리빨리 나누자고~


그렇게 우리는 본관 1층, 야외, 체육관 세 군대를 나눠서 조사하기로 했다.
본인들이 직접 자원하여 인원을 나누었다.
본관은 나, 이나즈마, 카가미네, 아이코, 자이메 총 5명이 진행하기로 했으며,
야외는 텐카, 세라, 아리이치, 하로 4명이서,
체육관은 기나오, 타다요시, 미즈오, 아야카 4명이 진행하기로 하였다.


카 미오리: 그럼 본관과 체육관 조사하는 이들, 잘 부탁한다.
 
나즈마 마이리: 걱정 붙들어 매!
 
 
이나즈마는 콧대를 치켜 세우듯이 자신만만하게 말했다.
 
 
카 미오리: 자신감 있는 모습은 매우 좋다만 자만하진 말아라.

나오 소오타: 혹시라도 아코 씨나 쇼타 씨를 만나게 된다면 그때는 어떻게 할까요?
 
다요시 미네로: 당연히 같이 조사하도록 회유해야 하오. 몰론 그 둘이 원한다는 가정이지만 잘 얘기하면 들어 줄 것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소.
 
카하시 아리이치: 걔네들 고집 존나 쎄서 안 될 것 같은데?
 
즈오 미즈키: 그럼 안타까운 거지 뭐.

지타 유토: 어쨌든 만나면 서로 잘 얘기해보도록 합시다.

즈마키 하로: 알겠습니다. 그럼 저희 갈게요!
 
야카 세토: 다.. 다녀오겠습니다...
 
 
그렇게 본관을 조사하는 우리 5명을 제외한 나머지 8명은 차례대로 식당을 나가기 시작했다.
 
 
가미네 우타로: 떨어지지 말고 팀끼리 잘 붙어다녀야 되네!
 
이메 미치카: 좀 이따 봐 바이바이~!

이코 하야오: 조금 이따 보자~
 
나즈마 마이리: 뭔가 발견한 거 있으면 보고 하기다!
 
 
그렇게 간단한 형식의 작별 인사를 마치고 나니, 그렇게 그 많은 인원이 있던 식당에는 5명만 남아있게 되었다.
허전하면서 갑자기 조용해진 분위기에 언젠간 이 식당도 5명만 남게 될 날이 올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 엄습한다.
체육관에서 느꼈던 기묘한 긴장감과 불안감 속에 또다시 발을 들여놓았다.

하지만 하나 확실한 건 불안해만 한다고 되는 건 없다는 사실이다.
시간이 좀 걸리더라도 최선을 다해 보기로 했다.
실패하든 어쩌든 아무 상관이 없다.
결국 지나친 기대와 불안은 부질없다.
결과적으로 모든 것은 죽을 때 다 가지고 갈 수도 없다.
아직 인생을 20퍼센트도 살지 않았지만, 사람에게 제일 필요한 것이 여유라는 것을 안다.
그러면 이렇게 불안한 상황 속에서 내 여유를 한 번 챙겨보러 떠나봐야겠다.
그러고 나서 내 것들은 챙기는 단단한 마음을 선보이자.
 


 

 
-2화 完-

ps. 분량이 더 있었는데 너무 길어져서 여기서 끊어갑니다.
모두 좋은 한가위 되시길 바랍니다.